월드컵과 지방선거 및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2002년은 간지로 보면 임오(壬午)년. 근세사를 돌이켜보면 임오년에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는데 특히 큰 사건으로 120년전인 1882년의 임오군란과 240년전인 1762년의 임오화변(壬午禍變)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임오화변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 북비고택(北扉古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북비고택은 임오화변 때에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으로 충정을 다한 이석문의 집이다. 이석문은 영조가 사도세자를뒤주에 가두고 그위에 돌을 얹으라고 하자 이를 거부하고 통곡했는가 하면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 옆에 아들인 정조를 업고가 내려 놓고 이를 제지하는 군졸들에게 '부자상면 하대군명(부자가 만나는데 임금의 명을 언제 기다린다 말인가)'이란 말을 했다고 전한다.
이로인해 이석문은 삭탈관직에다 곤장 50대를 맞고 한개마을로 낙향했다. 이석문은 사도세자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북향으로 사립문(北扉)을 내고 평생 두문불출하면서 충절을 다했다고 전한다.
이후 조선 순조 21년(1821)에 손자인 사헌부 장령을 지낸 이규진이 안채와 사랑채를 신축했으며 사랑채는 그 후 증손으로 공조판서를 지낸 이원조에 의해 고종 3년(1866)에 중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가옥은 독립사랑채, 안채의 구(口)자형 배치 및 솟을대문 등이 남아 있고 장판각 1채, 안대문채 마방, 아래채 등은 멸실되었으나 인근 한주종택, 교리댁, 월곡댁 등과 함께 조선후기 전통 건축사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이집에 살고 있는 이수학(63)씨는 "이 집에서 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내려 제사를 지내는 치제(致祭)만도 3번이나 치렀을 정도"라며 "충절의 상징인 북비고택의 보전뿐아니라 나라사랑 정신의 계승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성주.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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