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국, 2001년 아르헨티나

입력 2001-12-27 12:20:00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아르헨티나는 한국인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나라다. 지난 23일 외신을 통해 비쳐진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 대통령의 취임식 광경이 그랬다.

소요사태끝에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대통령이 중도 사임하고 뜻밖에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됐기에 그의 기쁨은 남달랐겠지만 '표정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사아 신임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기쁨과 환희로 열광했다.

만신창이가 된 국가경제를 다시 회복시켜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게된 신임 대통령으로서 고뇌하는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지난 1998년 2월 IMF 사태속에 치러졌던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때의 엄숙하고 결연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사람으로서는 사아 대통령의 취임식 광경은 한편의 코메디처럼 비져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연휴기간동안 아르헨티나 부유층은 국가부도에도 아랑곳없이 흥청망청 돈을 뿌렸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실업자와 걸인이 넘쳐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는 고급 외제차를 탄 부유층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고 호화의류매장은 매출이 오히려 늘어났다.

게다가 각 기업체들의 도산과 상점폐쇄가 잇따르는 가운데도 탱고 업소만은 아직도 호경기를 누리고 있다. 수많은 탱고 강습소들과 댄스클럽은 국가부도사태속에서도 손님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IMF 사태직후 대외부채를 갚기위해 각 가정마다 돌반지 금팔찌 등을 내놓으며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던 한국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경제난을 외면하는 아르헨티나의 불행은 사실상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속된 경제실정끝에 정부는 국민들로 부터 신뢰를 상실했고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1990년대초 최빈층과 최부유층의 격차가 27배에서 현재는 120배로 뛰어 올랐다. 희망을 잃어버린 중·하류층의 다수 국민들은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고 만 것이다. IMF 사태이후 빈부격차가 더욱 늘어나고 청년실업이 급증하고 있는 한국경제가 아르헨티나 사태를 통해 교훈을 삼야야 할 부분은 정부가 국민들, 그중에서도 중하류층의 좌절과 절망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류승완 기자 ryusw@imaeil.com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의 타개책으로 내놓은 제3의 화폐 '아르헨티노'가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새 화폐가 소비활동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아르헨티노를 너무 많이 발행하면 다시 1980년대의 인플레이션 상황으로 돌아가 정부의 재정적자를 가중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부정적 전망=새 화폐 발행이 자연스럽게 페소화의 평가절하로 이어지고 이것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함으로써 남미 제2의 경제인 아르헨티나가 다시 1980년대의 인플레이션 사태를 겪게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새 화폐인 아르헨티노가 본격적으로 유통될 경우 초기부터 달러화에 대해 30∼50% 가량 평가절하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인플레 우려로 사재기 등 부작용은 물론 걷잡을 수 없는 달러 사재기 사태 등 금융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제3의 화폐 도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일부 기업들은 벌써 상품가격을 30% 가량 인상하고 있다. 뉴욕의 산탄데르 히스파노 센추럴 경제연구소의 칩 브라운 회장은 제3의 화폐도입은 '사실상의' 평가절하를 유발할 것이라면서 "아르헨티나에서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 법칙이 작용하는 것을 보게될 것으로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긍정적 전망=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대통령은 26일 노조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새 화폐가 생산부문을 활성화시키도록 도와줄 것"이라면서 새 화폐를 너무 많이 찍어내면 인플레가 촉발될 것이라는 우려를 일축했다.

로돌포 프리게리 임시 재무장관도 새 화폐는 기술적으로 보면 현금처럼 사용되는 채권이며 국민은 이 화폐를 봉급, 세금, 상품, 서비스 등 모든 것을 지불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 정부는 제3화폐 발행을 통해 태환정책에 묶인 페소화를 없애고 궁극적으로는 아르헨티노화와 달러화만을 유통시키면서 환율변동체제로 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페소화가 자취를 감추면 자연스럽게 태환정책의 근간인 태환법도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태환정책의 폐지나 급작스런 화폐개혁으로 인한 혼돈이나 충격을 없애면서 아르헨티노화는 태환정책의 붕괴로부터 '질서있게 빠져나오는 비상구'뿐 아니라 경제난 극복 및 경제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류승완 기자 ryusw@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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