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영국 리버플 출신 4인 록그룹 비틀스(Beatles)의 폭풍은 60년대 전세계를 휩쓸었다. 음악을 넘어선 60년대 청춘문화 키워드 였다. 62년 6월 당시 19~22세 더벅머리 4인조 그룹이 런런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러브 미 두(Love me do)'는 단숨에 영국의 차트를 점령한다. 후속앨범 '쉬 러브즈 유(She loves you)'등은 '비틀매니아'라는 신조어(新造語)도 만들면서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강타했다. 지난 64년 비틀스가 뉴욕 케네디 공항에 내리던 날, 공항 개장이래 최대인파가 몰렸다.
▲세계최고 인기를 누렸던 이들도 우호적인 관계가 계속 이어졌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폴, 너와 린다의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할거야" 비틀스 그룹의 멤버였던 존 레넌이 동료 폴 매카트니에 보냈던 편지의 내용으로 지난 70~71년쯤 보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장 분량의 편지는 레넌이 매카트니 부인 린다를 가리켜 "성미가 변덕스럽다"고 비꼬기도 하는 등 심각한 불화를 보여주고 있다. 매카트니 부부는 레넌의 지적과는 달리 98년 린다가 암으로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았다. 존 레넌은 80년 뉴욕에서 광적인 팬의 총에 맞아 숨을 멈췄다.
▲전설적인 룩그룹의 리더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이 폐암으로 28일 삶을 마감했다. 좌절보다는 영광이 돋보이는 일생을 58세로 끝막음 하면서도 그는 평소와 같이 침착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해리슨이 숨져 4인조 비틀스 멤버 중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만 남았다. 흔히 비틀스 음악의 특장은 해리슨 기타의 강렬한 비트에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매카트니의 선율감각과 같은 수준에서 놓고 보는 것이다. '비틀스의 비트'는 포크송이나 트위스트에 식상한 미국 10대들을 한순간에 휘어 잡았고 60년대 세계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으로 꼽힌다.
▲비틀스의 출현은 세계 여러나라가 '문화수출'을 더욱 인식하게 된 계기로 봐도 무방하다. 지난 70년 해체때까지 미국싱글레코드 매출의 6할이 비틀스였고 4인조의 가발이나 인형, 기타, 노칼라 재킷 등도 불티나게 팔렸었다. 당시 영국 흄 총리는 이런 비틀스를 대견하게 여겨 '영국을 외환위기서 구한 비밀무기'라고 세계에 자랑 했었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하면서 격려했다. 지금 중국을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비틀스와 같은 '폭발성'지속과 부가가치 창출에 있다.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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