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표절 '망신'

입력 2001-11-19 00:00:00

미국 사회는 창조적 고통에 대해 부와 명예를 주는 한편 남의 '창의'를 몰래 도둑질하는 '표절' 행위는 가혹하게 처벌한다. 우수한 두뇌를 수없이 배출하는 배경에는 창의를 존중하는 문화와 표절 행위나 불법 복제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지적재산권' 관련법의 집행이 뿌리 깊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빌 게이츠는 미국의 독특한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순정 미국 제품'이라는 말에 쉽게 수긍이 가고 공감이 되는 것도이 때문이다.

0..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창조'에 대한 찬양이 산을 이룰 정도라면 '표절'이나 '모방'에 대한 비난은 천길 절벽과도 같다. 남의 글을 훔친다는 의미를 지닌 희랍어 'Plagios'는 '근성이 나쁜 사람'이란 뜻이라고 하지만, 이 같은 행위는 명백한 도둑질이다. 심지어 에머슨은 '모방은 자살'이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대학 사회에서조차 표절 불감증이 만연돼 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0..국제적으로 저명한 학회지에 실린 국내 대학 교수의 논문이 외국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나 당사자가 사과문을 싣는 등 '국제 망신'을 산 일이 생겼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 산하 통신학회학회지 5월호에 동서대 백모, 경북대 박모, 포항공대 홍모 교수 등 3명이 공동 집필한 논문 '유틸리티 모델을 활용한 멀티미디어 인터넷 서비스의 서비스 수준 규약 관리'는 캐나다 빅토리아대 연구팀의 논문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0..빅토리아대 에릭 메닝 교수 등은 자신들이 발표한 논문의 표절 의혹을 제기, 조사에 나선 학회측은 이 학회지 11월호에서 30여개의 문단과 도표 등이 거의 일치하고 단어 하나 틀리지 않는 문장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사자의 공식 사과문까지 함께 실었다. 사과문에서 백 교수는 '혼자 표절했으며, 제1저자인 박 교수와 제3저자인 홍 교수는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런 학자가 어떻게 강단에 설 수 있었는지,한심하기 짝이 없다.

0..에릭 교수가 '특허까지 받은 논문을 6세 손녀조차 알아챌 정도로 그대로 베껴 적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노골적인 절도'라고 비난했다. 관련 대학 인터넷 홈페이지엔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커닝하지 말라고 하겠죠'라는 비난의 글도 올라 있다고 한다. 학문은 밤을 새워 연구하는 교수들에 의해 발전하므로 '대학의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는 말도 있다. 창의의 암적 존재인 표절 문화가 근절되지 않는 한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학 사회부터 '슬갑도적'들이 사라졌으면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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