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가족 주부들 신종 스트레스

입력 2001-10-08 14:46:00

전업주부 김모(34)씨. 결혼생활 만 6년째 접어드는 그는 요즘 부쩍 스트레스가 늘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남편의 봉급으로 그런대로 알콩달콩 살아왔다. 초보 주부일 때부터 가계부를 써올 만큼 알뜰한 것도 자랑거리.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한번씩 가계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돈의 액수부터 시작해 용도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정도가 거의 기업 감사를 받는 수준이었다. 김씨는 이제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부럽다. 내 일을 한다는 그런 자부심보다 어느정도 여유를 가지고 자기만의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다.

핵가족이 보편화된 때문일까, 남편 시집살이를 하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 이때까지 주부들의 시집살이는 주로 그 대상이 시부모였다. 확대해봤자 시누이정도. 그러나 분가(分家)하여 시부모와 따로 사는 가정이 급증하면서 알게 모르게 남편 시집살이가 더 많아진 게 현실이다.

남편 시집살이를 겪는 주부들은 하소연 할 데도 없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큰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육체적으로 고된 시집살이가 부러워질 정도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홈페이지(www.home21.co.kr) 토론마당에선 '남편들의 잔소리'가 화제로 등장했다. '수선화'라는 아이디의 한 주부는 집안 청소에 대해 자주 지적하는 남편에 대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항변한다.

때로 약간씩 갈등을 겪은 적은 있지만 이들 부부에게 서로 '잔소리'라 할만큼의 거리감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 둘을 낳고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흩어진 장난감들, 유아용 책, 아이들의 옷가지 등으로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그때부터 남편 입에서 "청소 좀 하고 살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난들 이렇게 살고 싶을까, 하는 마음에 섭섭해질 때가 많아졌다. 아이들이 커서 깨끗하게 정돈된 다른 집에 가면 부러운 마음에 '난 언제 이렇게 하고 살까'하소연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집안 지저분하게 해놓고 사는 그 때가 좋은 거라고. 그 말의 의미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게 되고 또 마음의 위로도 얻는다. 그래도 이제는 마음이 편한 대로 살고 싶다.

결혼 11년째인 이미연(37)씨는 자칭 아줌마다. 아이 낳고 살림만 살다보니 차츰 편한 옷을 찾게 되고 다른 액세서리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게 여겨졌다. 그런 이씨에게 남편은 늘 이것저것 지적한다. 머리가 어떻느니, 옷이 촌스럽다느니, 이런 옷을 입어라 등등. 그럴 때면 이씨는 순간적으로 화가 난다. "옷 한번 제대로 사주고 얘기하라"고.

대부분 남편들은 이런 아내들의 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아내들은 그런 남편을 보면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내가 외모에 신경쓰지 않을 때 여자가 아닌 아줌마로 느껴지듯 주부들은 남편들이 잔소리할 때 남자가 아닌 아저씨로 느낀다.

33쌍의 장남부부를 인터뷰한 후 '장남과 그의 아내'(새물결 발간)란 책을 낸 사회학 박사 김현주(40)씨는 "며느리에게 자율성을 줄 때 시부모를 잘 모시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남편 시집살이에 고달픈 주부들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역시 자율성을 찾는 일이다. 남편 시집살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주부 자신들이다. 남편만 원망하기보다 나 자신의 문제부터 헤쳐나가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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