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자연보호 산악회 김해동씨

입력 2001-09-10 00:00:00

산 할아버지 김해동(68)씨는 팔공산의 청소부이다. 42년째 산을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치워왔다. 매월 적게는 3, 4회, 많게는 8, 9회 산을 오른다. 대구 자연보호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팔공산을 비롯, 지금껏 3천회쯤 전국의 산을 올랐다. 커다란 배낭처럼 등에 메고 내려온 빈 깡통과 병, 쓰레기는 매년 100ℓ 짜리 포대 4천장이 훨씬 넘는다. 할아버지의 달력엔 산행코스와 일정이 무슨 기념일처럼 표시돼 있다.

김 할아버지가 팔공산 청소부가 되기로 작심한 것은 지난 1960년. 육군병원 공무원 시절 100여명의 산악회원들과 가산산성에 올랐던 때부터이다. 100여명이 모여 앉아 밥을 해먹던 중 근처 인가에 살던 한 할머니가 나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이 노무 손들, 밥 해묵었으면 쓰레기 치울 줄도 알아라". 할머니 집 근방에는 등산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쓰레기를 모두 이고 지고 내려온 것이 김 할아버지의 팔공산 청소부 생활의 시작이었다.

"산이 좋아 오르고 산을 아끼는 마음으로, 또 운동삼아 쓰레기를 지고 내려왔습니다". 김 할아버지의 산 쓰레기 치우기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주관하는 무슨 거창한 운동이 아니고 보수를 받는 일도 아니다.

할아버지는 팔공산만 편애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이끄는 대구자연보호산악회 회원들은 매월 한 번씩 전국의 산에 올라 쓰레기를 나뭇짐처럼 지고 내려온다. 팔공산에 기대어 사는 겨울새와 산짐승들의 겨울나기도 김 할아버지의 몫이다. 모이 챙기기 20여년, 이제 새들은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하듯 '모이 먹어라' 부르면 어디선가 포로롱 날아온다. 십자매, 꾀꼬리는 아예 손바닥에 올라앉아 모이를 쪼아댈 만큼 익숙한 사이가 됐다.

김해동 할아버지는 팔공산 청소부 겸 소방수이기도 하다. 산불 감시는 물론이고 불이 났다는 연락이 오면 산악회 회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으로 달려간다. 그 덕분에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수십개의 표창장과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죄스럽고 쑥스럽다'며 끝내 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악회원이 늘고 새 조직이 창립되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할아버지의 자연사랑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몇 달 전 쓰레기 수거를 마치고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아직도 이곳저곳이 쑤신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50㎏에 가까운 쓰레기를 지고 산을 오르내릴까 싶지만 그쯤은 문제가 아니다.

IMF로 회원들마다 사는 것이 빡빡해지면서 찬조금이 점차 줄고 있다. 100리터 짜리 비닐 포대와 마대를 사는 일도 요즘엔 만만치 않다. 매주 한두 번 50, 60명의 도시락을 챙기는 일은 언제부터인가 집안 일에도 벅찬 할머니의 짐이 돼 버렸다."몇 해전 대구 동성로에서 동대구역까지 걸으며 담배꽁초만 주워 봤어요. 한 달만에 100ℓ 짜리 포대 3포대가 나오더군요". 할아버지는 월드컵 대회와 U대회를 앞두고 외국 손님들이 무더기로 밀려들텐데, 산이 더럽고 거리가 더러우면 국제 대회가 무슨 소용이냐며 상한 시민정신을 나무랐다.

조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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