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國恥日 斷想

입력 2001-08-29 00:00:00

1910년 오늘인 8월29일. 나라를 일제에 빼앗겼다. 국가적인 치욕을 겪은 날이라고 해서 국치일(國恥日)이라 부른다. 특히 올 국치일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또 다른 감회를 갖게 한다.

91년이 지난 오늘, 그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욕된 역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역사 창조를 다짐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런 참뜻은 잊혀진 채 국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당리당략에 목숨건 부끄러운 정치

최근 졸업한 3년8개월간의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가 대표적인 예다. 국가가 부도 위기에 몰리던 97년 12월3일 정부는 결국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국민들은 이날을 '경제 국치일'로 부른다. 을사보호조약에 항거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외쳤던 장지연 선생을 떠올리며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 23일 마지막 빚을 갚으면서 경제신탁통치는 벗어났으나 경제불안의 먹구름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

최근 우리나라가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항공안전 위험국'판정을 받은 것 또한 '하늘의 IMF'요 국치 아닌가. 후진국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콩고, 방글라데시와 같은 반열에 이름이 오르는 망신을 당한 것이다.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나라가 이처럼 부끄럽게 된 요인은 두말할 나위없이 잘못된 정치에 기인한다. 당쟁과 정쟁이 망국을 초래했고 나라를 위기로 내몰았다.

남남, 보혁 등 사회갈등만 초래

구태여 지난 일을 꺼낼 필요도 없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정치행태 역시 부끄럽기 짝이 없는 국치감이다. 통일축전 방북단 문제를 둘러싼 여야3당의 힘겨루기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사안의 본질은 어디가고 당리당략만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은 임동원 통일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해 놓고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 햇볕정책을 주도하면서 국민 자존심에 중화상만 입혔다는 것 등이 이유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타깃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민주당은 "국민의 정부 42개월동안 26번의 해임.탄핵안을 제출한 것은 낯두꺼운 정치파괴행위"라며 요지부동이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의 행보는 더욱 가관이다. 케스팅보트를 이용, DJ를 몸달게 하고 이회창 총재를 유인하는 '곡예정치'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여야 영수회담도 암초에 걸려 좌초위기다. 민주당 안동선 최고위원의 이 총재에 대한 막말 때문이다. 비방정치, 협량(狹量)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서글픈 대목이다. 나라와 국민을 우선하는 정치인들이라면 조건없이 만나야 한다. 그리고 지혜를 모아 난국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비방 자제하고 국민 우선하는 광폭정치 기대

언론국정조사도 특위만 구성했을 뿐 계속 헛돌고 있다. 여당은 이 총재를, 야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증인 채택을 주장하며 연일 입씨름이다. '국정조사 자체를 무산시키려 한다'며 서로가 파행에 대한 책임전가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정치가 이 모양이니 나라가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침체된 경기는 좀체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출은 급감하고 실업자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남(南南)갈등, 보혁갈등에다 언론 편가르기까지 사회갈등도 그 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정치는 한 치의 개선이 없다. 또다시 '국치일'을 자초하려는 것일까.

부끄럽지 않은 정치. 부끄러워할 줄 아는 정치인. 국치일에 이런 기대를 한 번 해보는 것이 지나친 생각일까.

정택수(정치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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