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준칼럼-고이즈미는 변화시킬까

입력 2001-04-30 00:00:00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일본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민당이 변해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총리에 당선됐다. 과연 그가 이 새로운 정치실험에서 성공할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고이즈미는 일본정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는 집권당내에서 고질적인 파벌 틀을 지양하고 있고, 고통이 따르는 경제구조조정을 요구하며 '보통국가'를 지향한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있다. 단시일내에 그가 이러한 노력에 큰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그는 전통적인 합의정치와 관치경제의 틀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고이즈미는 자민당내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파에 정면대결, 처음으로 실시된 예비선거에서 압승해 총리자리에 올랐다. 11년만에 13번째 총리로 선출된 그는 17개 부의 각료들을 뽑는데도 당내 파벌간의 안배를 중시해온 전통을 깨고, 능력과 경험위주로 인선을 단행했다. 3명의 여성과 3명의 민간인을 포함한 새 내각은 보다 젊고 참신한 인물로 포진했다. 이는 '인사가 곧 정책이다'라는 미국정치의 한 격언을 연상케 한다. 고(故) 다나카 총리의 외동딸 다나카 마키코를 외상에 임명한 것과 재정개혁을 주장해온 게이오대학 교수인 다케나카 헤이조를 경제정책상으로 발탁한 것은 종래 5선이상의 국회의원들로 내각을 구성했던 전례를 깬 것이다. 이처럼 고이즈미가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당내 주류파들의 지지없이 민심의 뒷받침으로 총재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일본정치사상 최초의 벌어진 예선에서 자민당내 투표자 절대 다수의 지지로 승리했다. 이는 작년 4월 오부치 총리가 갑작스레 사망하자 자민당 파벌들의 보스들이 밀실에서 모리를 총리로 지명한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그 뒤 모리는 경기회복 실패와 잇따른 실언으로 인해 지지도가 9%까지 떨어짐으로써 사임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새 총리가 된 고이즈미는 궁극적으로 파벌정치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예처럼 직선에 의한 총리선출을 하게끔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고이즈미는 10년간 계속되어온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펴온 공공사업과 이 결과로 누적되어온 재정적자를 대폭 삭감하고 실업자들을 감수하더라도 은행과 기업들의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인구의 10%가량 고용하고 있으며 자민당에 정치자금과 지지 기반이 되어온 건설회사들까지 구조개혁을 할 것을 고이즈미는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단기적으로 희생을 치러야만 '상실된 10년'(소위 L형 불황)을 종식시키고, 일본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솔직하게 개진하고 있다.

한편 외교안보정책에서 고이즈미는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해 국가에 대한 충성과 일체감을 동원하고 있다. 그는 자위대가 군대가 아니라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자위대가 해외에서 '집단방위'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헌법 재해석도 지시했다.

그는 총리로서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도 직접 참배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에 있어서도 선거전 동안에는 한국의 수정요구를 내정간섭이라고 일축했지만 총리 취임뒤에는 일본이 국제고립을 피하기 위해서 주변국들과 협력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실적으로 고이즈미는 정치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의 개혁정책과 당내 지지파벌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오는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해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의 실험이 1993년 호소카와 총리가 겪었던 것처럼 단명으로 끝나더라도 개혁과 민의를 반영하려는 그의 노력은 일본정치에 적지 않은 유산을 남길 것이다.

안병준 (연세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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