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할 때였다. 지도교수가 평소처럼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 마시자고 청했다. 종종 있었던 일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응했다. '고생했다, 함께 지낸 시간이 많이 지났다,
학문을 사랑하려면 좀 외로워야 한다, 학문을 준비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라' 등 지도교수로서 안심이 안되었는지 공자님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진지한 말씀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그러더니 필자에게 줄 것이 있으니 잠깐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책상 밑에서 꺼낸 뭉치는 제법 컸다. 그냥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인가 주고 싶은 생각으로 준비한 것이니 집에 가서 풀어보라는 것이었다.
버스 속에서 무엇일까 호기심이 났다. 겉모양으로 봐서 10권 정도의 책이 아닐까 짐작했다. 일반적인 귀국 선물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풀어보는 순간 필자는 세속적인 기대감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선물은 지도교수가 아끼던 낡고 빛바랜 책 6권과 100달러, 그리고 돈을 싼 손수건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간단하게 쓴 유서같은 편지였다. 인간미 없고, 학생을 괴롭힌 미안한 마음에 자기가 즐겨 읽던 책을 동양인 제자에게 주려고 마음먹었던 교수는 훗날 필자가 로마를 방문해 자기 무덤(고인이 되었다면)을 찾을 때 예쁜 꽃을 준비할 돈이라고 적어 놓았다. 귀국후 5년이 채 안돼 지도교수는 고인이 되었다.
말씀대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을 가끔 꺼내어 읽기도 하고, 가끔 로마에 가면 묘지에 꽃도 꽂아놓고 잠시 함께 했던 일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지도교수처럼 죽음을 마치 오늘의 삶과 연결해 마지막 시간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깊은 신앙심에 근거한 부활에 대한 확신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아주 먼 시간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언제라도 일상적인 것처럼 자기의 소중한 것을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세야말로 편안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상념에 젖는다.
대구가톨릭대 교수.아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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