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성은 선인가 악인가. 맹자(孟子)는 이것을 착한 것이라 했고, 순자(荀子)는 악한 것이라 하여 우리들은 성선설(性善說), 성악설(性惡說)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들이 각기 다른 학설을 주장하게 된 근본적인 동기는 다같이 교육과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이들은 공자(孔子)의 유학을 배워서 유학사(儒學史)의 쌍벽을 이루는 두 조사(祖師)로 추앙 받는다. 흔히들 맹자를 읽으면 정신력이 발양된다고 하고, 순자를 읽으면 사고력이 단련된다고 하는데,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 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도 이들의 학설은 다같이 중요하다.
순자는 말한다.
"사람의 본성은 악이니 그것이 선이라는 것은 거짓이다. 사람들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利)를 좋아하니 이를 좇음으로써 다투고 빼앗는 일이 생기며 사양함이 없게된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질투하고 미워하는데, 이를 좇음으로 남을 해치게 되고 충성과 신의가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눈과 귀의 욕망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와 빛깔을 좋아하는데, 이를 좇음으로써 음란한 행동이 생기고 예의와 아름다운 형식이 없어진다. 사람마다 각기 감정에 따른다면 반드시 다투고 빼앗게 되며 분수를 어기고 이치를 어지럽혀 난폭함으로 귀결짓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과 법도에 의한 교화와 예의의 가르침과 인도함이 있어야 하며 그런 뒤에야 서로 사양하고 아름다운 형식을 갖게 되어 다스림에 이르게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성선설과 성악설을 배우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맹자가 옳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순진한 눈으로 본다면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점차 순자의 성악설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은 악인들에게 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품성도 이미 악한 것으로 변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늙어가면서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악한 자가 더 많다, 다른 사람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의심을 품고 산다는 것이 결코 행복한 삶은 아닌 탓이다.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와 동식물을 비롯한 여타 다른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잔악 행위에 접할 때마다 순자가 백 번 옳았다는 자괴(自愧)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으니 이것은 분명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천형이다.
거기에다 우리는 가끔 또 다른 회의(懷疑)에 빠질 때가 있어서 더욱 불행하다. 인간의 본성은 '악'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 악의 독성에 따라서 이 지구상의 인종을 다시 세분한다면 과연 우리 민족의 그것은 어느 수준일까, 하는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잔재주에 서툰 몇몇 다른 나라들을 돌다가 모국 공항에 내리는 순간, 아연 긴장해지는 것이 우리들이다. 사람들의 눈빛이 다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살아있는 눈빛이라고 말하지만 그동안 보아왔던 다른나라 사람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눈빛에서 문득 살기와 광기 같은 번득거림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눈치 빠르고, 변신과 거짓말에 능하고, 잔재주에 뛰어나고, 교묘하게 법을 잘 피해가고, 자기보다 못한 이를 멸시하고, 허세와 거드름을 잘 부리는 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속으며 살아가는 곳이 이 나라라는 인상을 남들이 받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집에 돌아와 쌓인 신문철을 훑어보노라면 김포공항에서 받았던 인상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이 실감되어 더욱 처량해 진다. 내가 이곳에 없었던 시간에 우리의 잘난 분들과 우리 이웃이 했다는 온갖 지저분한 짓거리들이 이 확신을 더욱 굳게 해주니 아무래도 우리가 잘 못 가는 것만 같다.
한양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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