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극성 연예인팬

입력 2001-02-06 00:00:00

영국의 더벅머리 록 그룹인 '비틀스'가 1964년 대중문화의 본고장인 미국을 흔들어 놓았다.

'비틀스'는 그해 영국에서의 인기 여세를 몰아 미국에 상륙, 전국을 순회공연하면서 팬들을 열광시켰다. 공연장에는 며칠 전부터 극성 팬들이 진을 쳤고, 공연 중엔 울부짖거나 졸도하는 젊은이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그해 미국에서 팔린 음반의 60%는 '비틀스'의 것이었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그들에게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중문화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10대들의 우상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에는 댄스그룹의 전성시대이며, 10대와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주체로 부상했다. 댄스그룹의 멤버 수를 '아는지, 모르는지'가 신.구세대의 구별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대중문화를 둘러싼 간극도 커졌다.

그러나 이제 10대 극성 팬들은 스타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소유하고 간섭하려 든다. 이즈음은 인기 연예인 10대 팬들의 극성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경쟁 가수의 팬들을 적으로 여기다시피 한 몸싸움은 예사이며, 경쟁 팬클럽과의 몸싸움을 맡는 '무력조'까지 있는 모양이다. 경쟁 가수를 모델로 쓰지 말라고 협박하면서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도 잦아 광고대행사들은 그런 사태를 우려해 청소년들을 겨냥한 상품의 경우 특정 연예인을 모델로 쓰려던 계획을 백지화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공공기관 홈페이지의 사이버 폭력도 마찬가지로 심각하다. 외국 영주권을 갖고 활동하던 한 인기 그룹 멤버가 입대하자 병무청 사이트에는 그 결정을 비난하는 글이 매일 수백건씩 올라 물의를 빚었다. 한 그룹 멤버를 음주운전으로 불구속 입건한 경찰서 홈페이지에는 하루 평균 3천건의 항의글이 올라와 곤욕을 치렀으며, 몇 차례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10대 청소년들이 연예인 팬클럽을 만들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교감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스타를 맹목적으로 아끼면서 그 걸림돌들을 해치려 하거나 군 입대마저 막으려는 극단적인 행동을 해서야 되겠는가. 팬클럽들의 자정 노력이 우선돼야 하겠지만, 연예인들이 소속된 기획사들이 책임을 나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고, 방송사들도 10대들이 맹목적인 스타 사랑에 빠져드는 환경 만들기를 지양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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