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가 약간 누렇게 빛이 바래 가는 사진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 보라며 사진 한 장을 나에게 내밀고는 30여년 전 접쳐진 자신의 젊었던 세월을 반추라도 하듯 우두커니 웃음을 띠고 서 있었다.
안경을 치켜들고 들여다 본 사진은 바로 제임스 그레이선(1975년도 당시 경북대 강사)이라는 문화인류학자와 학생들이 안압지 발굴 실습현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 속에 깡마른 체격에 공사장 잡부 차림의 허수룩한 7부 바지를 입고 현장을 설명하는 듯한 젊은이가 바로 '미술과 역사 사이에서'의 저자 강우방선생의 젊은 시절 모습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무렵 나는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솔)라는 시론집과 허만하 시인의 '모딜리아니의 눈'(빛남)과 그리고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에 매료되어 언어로 담지 못할 진실이 너무나 많아 답답해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특히 시인 허만하 선생과 강우방선생이 지적 교류를 넘어선 꽤나 고매한 우의의 관계에 있음은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두 사람의 사이를 지속적으로 여러가지 책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탐색해 본 적도 있었다. 시인 허만하는 "//시간의 썰물이 물러난 갯벌에서/ 내가 집어든/ 너의 고독했던 푸시케/ 한 쌍의 금동귀고리/ 그것이 애잔히 내뿜는/ 휘발성 가을 풀벌레 소리/ 네 개성의 자욱한 방사능 뿐이다//"(허만하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중에서 '고분발굴'에서) 라고 노래하면 강우방선생은 "허만하처럼 문학과 사상과 예술과 삶이 뗄 수 없는 한 덩어리가 되어 고뇌하는 인간을 만나기는 드물 것이다. 그 밑바닥에는 생의 일회성이란 처절한 인식이 도사리고 있다"라고 화답하고 있다.
선문답과도 같은 어느 시인과 미술사학자간의 공간을 뛰어넘는 담론은 허기진 이 시대의 지적 우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바람을 가로지르는 새가 아니라 바람에 밀려 하늘을 나는 외로운 한 마리의 새가 있다. 그 새를 만나려면 강우방의 '미술과 역사 사이에서'를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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