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트라다1998년 대선에서 품행과 통치력 등 자질 시비에도 불구, 빈민계층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올랐다.
젊은 시절 액션 배우로 활동, 그때 얻은 대중적 지명도를 발판으로 1969년에 고향 시장에 당선된 뒤 18년 동안 재임했다. 특히 1972년엔 행정부문에서 두드러진 역량을 발휘, 필리핀의 '우수한 젊은이 10명' 중 1명으로 뽑혔고, 1987년 상원의원, 1992년 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선천적으로 문제아였다. 1937년 마닐라 슬럼가에서 엔지니어 집안의 10남매 중 8번째로 태어나, 소년시절 낙제생으로 퇴학당하고, 3류 대학에서 토목학을 공부하다가도 집중력 부족으로 자퇴할 정도였다.
1960년대에 의사와 결혼했으나 바람을 피우다 버림 받았다. 부인은 세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생활이 문란, 사생아가 모두 몇 명인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간통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고, 작년 초엔 친구들과 심야에 술파티를 열던 중 정부 정책을 결정한 사실이 탄로나기도 했다.
외신종합=국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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