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의사의 소명' 다시 되새길때

입력 2000-12-27 14:33:00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을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사람들마다 자기만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서 수많은 제안과 비판들을 난무케 했다. 반대되는 주장에는 귀부터 막고 무수한 언어의 폭력을 날렸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이 언어 폭력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필자는 특히 의사들이 국민들 속에서 고립돼 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그때문에 이 정도 밖에 사회문화적 대우를 못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낙담하고 있을 때 어느 신부님의 강론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애들이 "버버리"라고 놀려댔던 어린시절 고향마을 아이가 오랜 세월 뒤 신부가 돼 들렀던 고향 마을에서 반갑게 환대하더라는 얘기였다. 신부님은 묵상 중에는 그 친구가 늘 생각 난다고 했다. 모두 홀대했던 아이가 꿋꿋이 성장, 오히려 신부인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은연중 가르침까지 주고 있다는 얘기였다.

필자도 외래 병동에서 농아 아동들을 보면서 가끔씩은 과연 내가 그들을 치료하고 있는지, 오히려 그들이 멀쩡한 나를 일깨우고 있는 것인지 섞갈릴 때가 많다. 어쩌면 나야 말로 아직도 농아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딱한 사람인 것은 아닐까? 언제나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는 나의 귀, 이득 될 때만 말을 하고 나면 남이야 무슨 하소연 하든 제대로 한번 벙긋 않는 나의 입…

시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나날이 늘고 있으나, 의사가 그것을 걱정하면 거개가 듣는둥 마는둥 해 버린다. 비정상적 방법의 치료와 보약, 의료 외적인 처치들을 조장하는 정부 정책, 고가 건강식품의 무절제한 수입 허용… 그것들에 들어가는 돈은 순수의료비를 능가하고, 그러면서도 모두 의료비로 치부된다. 그런데도 제대로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에파타'를 외치고 싶다. '열려라'는 말이다.

전무후무할 대파동의 한해를 보내는 의사로서 우리의 소명을 다시한번 되새긴다.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 더불어 살아 갈 때만이 의사의 정당한 주장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대우도 그에 뒤따를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들은 자기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의료직에 종사하길 계속 바랄 것이고,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마지막까지 의사에게 남아 있으리라는 확신 속에, 몸의 귀만 열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귀까지 열리게 되는 진정한 '귀 의사'가 돼야 하겠구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상흔(경북대 의대교수·이비인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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