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합섬 법정관리 폐지

입력 2000-12-01 00:00:00

법원이 1일 채병하 대구상의 회장이 대표로 있는 대하합섬의 법정관리를 폐지한 것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당장 공장 가동을 재개하려면 250억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주거래은행인 산업은행이나 대구은행이 자금 지원에 난색을 표명했기 때문.

◇기각의 배경

은행들이 자금지원을 꺼린 이유는 섬유경기의 장기 불황이 결정적 요인. 특히 화섬업계의 경우 원유가 상승에 따른 원가상승 압박에다 재고가 넘쳐 업체들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돼 있는 상황이었다. 업계 자율감산 조치 등을 통해 줄인다고 줄였지만 아직 업체마다 20~30% 가량의 재고를 안고 있다. 여기다 중국, 인도네시아 제품들과 경쟁하면서 가격이 폭락, 원가인 파운드당 65센트에도 훨씬 못미치는 50센트대에 형성되고 있으며 그나마 제대로 팔 수도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하합섬에 대한 자금 지원을 해봐야 겨우 목숨만 연장할 뿐, 회생시키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법원이나 거래 은행들이 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파장

이번 사태로 가뜩이나 불황인 대구 직물업계를 비롯한 섬유업 전체에 위기감이 그대로 전달되면서 '도대체 지역에서 살아남을 업체는 몇개나 될 것이냐'는 불안으로 확산되고 있다.

업계는 대하합섬 파장으로 법정관리나 화의, 워크아웃 등 외부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절실한 자구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단계.

선발 대기업들보다 불리한 처지에 있는 지역 후발 화섬업체들은 부도·파산 도미노 현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촉각을 곤두 세우며 공급 과잉 시장 체제에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뒤늦게 원사 생산 경쟁에 뛰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발 지역 원사업체들은 지난 11월21일 삼양사와 SK케미칼이 공동 출자해 만든 통합 법인 '휴비스' 출범에 맞서 대형 원사업체들과 짝짓기를 시도중이다.

직물업체들도 고부가가치 상품 생산으로 나가지 않으면 결국 도태된다고 보고 묘안 짜내기에 골몰중이나 뚜렷한 방법이 없어 난감해 하는 상태.

◇대하합섬 진로

대하합섬은 14일이내에 항고하지 않으면 자체 생존 방안을 강구하지 않는 한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

대하합섬의 부채는 올해초까지만 해도 2천400억원이었으나 법정관리를 신청할 당시인 지난 6월말 2천700억원으로 불어났다.

채권·채무가 동결돼 있는 상황이어서 현재 부채도 이 정도선이지만 자체 능력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전망. 여기다 전기료 등 각종 공과금도 미납돼 있는 상황이어서 이를 처리하지 않는 한 공장 가동을 할 수가 없게 돼 있다. 대하합섬측은 금융권 지원을 받아 이를 해결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법정관리 폐지 결정으로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상의 반응

채병하 대하합섬 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는 대구상공회의소측은 법정관리 폐지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면 회장 업체의 부도로 침체에 빠졌던 상의 위상 재정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대구상의 직원들은 "항고 등의 기회가 있는만큼 상황이 완전 종료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한편 법정관리 폐지를 계기로 지난 6월 대하합섬 부도와 법정관리 신청 이후 끊이지 않았던 채회장의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업체가 파산할 경우 회장직 유지가 어려워지는만큼 측근 인사에 회장직을 인계하려는 채회장과 이를 저지하려는 반 채회장측 인사들간의 알력이 표면화될 전망이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김가영기자 k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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