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데스크-대통령 선거가 망친 농촌

입력 2000-11-28 15:16:00

사농공상(士農工商). 선비.농민.장인.상인의 순으로 등급을 매긴 조선시대 신분계급제도다. 당연히 이 등급을 매긴 주체는 1등급의 선비계급, 기득권계층이다. 기실 농자(農者)를 천하대본(大本)이라고 추켜세운 이면에는 세금을 가장 많이 거둘 수 있는 게 농사였기 때문이기도하다.

이 2등석 농민이 지금 꼴찌로 내려앉았다. 세금을 많이 내기는커녕 세금탕감을 받아야 할 처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열심히 땀흘리고도 결과가 꼴찌라면, 그리고 여기에다 소위 1등급에 있는 정치인, 농정을 책임진 공무원, 학자들의 정책실패.농정부재가 이 꼴찌에 부조를 했다면 가만히 있는 X이 바보. 그래서 농민들은 일주일전 오늘 전국적으로 집단행동을 해버렸다.

##정부의 농축산 정책 실종

이 집단여론에 가장 취약한게 이땅의 최고업종인 국회의원들. 집단시위 하룻만에 여야할것 없이 농가부채경감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호들갑을 떨고있다. 부채탕감 내지는 경감이 농민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돼가고 있는 것이다. 돈달라니까 돈주겠다, 깎아달라니까 깎아주겠다, 미뤄달라니까 미뤄주겠다는 정책이다.

농사를 체험하지 않아 잘은 모르되 주위에 있는 이런저런 농민들의 입들을 모아보면, 지금 1등급 선비계급들이 내놓은 돈 대책은 1회용 반창고같은 것이지 전혀 근본대책이 아닌 것 같다. 국회도 농림부도 농민들의 고함에 놀라 부채경감에만 매달렸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기색이 아니다.

뚱딴지같은 얘긴지 모르나 나라근본이 농업입국에서 공업입국으로 바뀐이래로 이땅의 농촌은 대통령선거가 망쳐놓았다. 대권욕에 눈먼 역대 대통령들이 선거때마다 농산물값 묶어놓고, 값오르면 수입하고, 곪아터지면 부채탕감 운운했으니 이말이 틀린 얘긴가? 유권자수로봐도 도시서민.근로자가 농민보다 많으니 우선 표부터 긁어모으고 보자는 정책에 수십년 웃다가 울다가 해온 것이다.

##농민 집단행동 유발

그래서 도무지 농산물 가격에 안정감이 없다. 과수농을 예로들어보면 우리 과수농들은 흔히 5년단위로 사과심었다, 배심었다, 포도심었다 한다고 한다. 불안하니까 작목을 바꾸면서 발버둥쳐보다가 스톱해버린 과수농가가 허다하다.

사과는 어떤가? 수확한후 상자 사고 품일꾼 사서 선별.포장하는데 상자당 2천원은 든다. 차에 실어 공판장까지 가면 하차비(상자당 50원)에 경매수수료 7% 등등 치면 최소 경비가 3천원. 그런데 하품은 3천원이하인 경우가 수두룩하니 싣고와봤자 헛일이다. 폐농의 악순환이 여기서 비롯한다. 여기다 배추같은 것은 공판장에서 솎아낸 배추쓰레기 청소비까지 농민들이 물고 있다. 장관.국회의원들께서 이런 것까지 알까?

마늘.양파들도 마찬가지다. 가을에 몽땅 거둬가기로 철석같이 약속하고 10만~20만원 계약금조로 내놓고 간 중간상들이 정작 수확철에 값떨어지면 코빼기도 안보이니 거름주고 약치고 뼈빠지게 지은 농사 누가 갈아엎고 싶어서 엎나?

닭은 또 어떤가? 돼지.소와는 달리 닭은 수매기관도 없다. 중간업자와 계약 해놓으면 출하시기등 그때부터 모든걸 상인이 결정해 버린다. 보통 육계는 1.7~1.8㎏되면 출하하는데 ㎏당 1천500원 정도로 값이 좋을땐 사가지 않는다. 양계농들의 속이 새카맣게 타서 800원정도쯤으로 떨어져야 갖고간다. 대금결제도 서너달 어음 끊듯이 질질 끈다. 죽도록 일 해놓으면 상인들만 실컷 빨아먹는 것이다.

##가격 안정 대책이 급선무

도대체 우리에게 농축산정책이 있는 것인가? 우리는 왜 개별 농민들이 사과를, 배추를 상자까지 직접사서 품삯 줘가며 선별포장해야 하는가? 왜 공판장쓰레기 청소비까지 농민들이 부담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물벼 그대로 수매해서 정부가 건조.저장하는 방식을 택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뼈빠지게 지은 마늘.양파.배추를 사가지 않는 계약상인들을 처벌하는 법이 없는가?

우리에겐 왜 이 공동집하.포장.저장을 위한 농업기반시설도, 가격지지정책도 없는가. 우리에겐 왜 부채탕감정책만 있는가? 왜 대통령선거때마다 말같잖은 공약만 되풀이하는가? 누군가 이렇게 말했었다. 배고픈 어부에게 잡은 고기를 주는것은 하루대책이요, 고기잡는 그물을 주는 것은 평생의 대책이라고.

姜健泰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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