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상징인 서울 종로구 계동 본사 사옥이 막바지에 이른 현대건설 자구계획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건설의 '뜻'과는 달리 정작 현대중공업이 사옥매입 불가입장을 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사옥 매각대금 1천650억원을 포함해 총 1조원의 자구 밑그림을 완성한다는 현대건설의 계획에 '펑크'가 난 셈이다. 형제간 극적화해를 계기로 '매각성사'를 당연시하던 현대건설로서는 몹시 당황해하는 눈치다.
◇계동사옥=83년 건립된 연건평 4만510평규모의 건물로 지하 3층, 지상 14층의 본관(2만2천347평)과 지하 3층, 지상 8층(1만320평)의 별관에 체육관, 주차장, 부대시설로 구성돼 있다. 인근 토지는 9천128평이며 이 중 45%는 공원이다. 당초 건물 전체가 현대건설 소유였으나 98년 12월 구조조정 차원에서 당시 층별로 입주해있던 현대 계열사들에 분할 매각했다. 당시 자동차, 종합상사, 정유, 중공업이 전체건물의 37%인 1만5천158평을 1천334억원에 사들였으며 이 중 자동차가 본관 지하 1층, 7, 8, 9, 14층과 별관 3층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건설 소유분은 본관 6개층(1, 4, 5, 6, 12, 15층)과 별관 6개층의 사무실 건물, 체육관, 주차장, 부대시설로 줄어 들었다. 계동사옥은 정몽구(MK) 현대자동차 회장과 정몽헌(MH) 회장이 정통성 승계를 둘러싸고 서로 '자기 건물'이라며 번번이 충돌을 빚어왔다. 그러나 지난 3월 '왕자의 난' 당시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MH의 단독회장 체제를 승인하고 9월 계열분리가 승인되자 현대자동차는 2천150억원에 양재동 농협빌딩을 사들이고 계동시대를 마감했다.
◇중공업 '더이상 못해준다'=중공업의 건설측 지원요청을 거부한 논리는 간단하다. 엄연히 본사가 울산이고 현재 계동사옥 입주분(본관 11층, 별관 6층)은 말그대로 서울사무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력도 국내영업에 필요한 인력 400여명만이 상주, 추가로 건물을 매입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설령 건물을 매입하더라도 관리인력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특히 지난해 11월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강남구 역삼동 현대산업개발 빌딩을 1천250억원이라는 헐값에 매각한 전례가 있어 1년도 채안돼 새로이 건물을 매입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공업이 내거는 또다른 이유는 시민단체와 소액주주의 눈이다. 과거와 같이 '형제간 의리'에 호소해 건물을 매입했다가는 즉각 송사(訟事)를 당하기 십상이라는것이다. 실제로 참여연대는 17일 오전 '현대건설에 대한 부당지원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서한을 보내 계동사옥 매입시 법적대응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MK(정몽구 현대차 회장)가 조충휘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까지 했고 MJ(현대중공업 고문)도 협조하라는 뜻을 내비쳤지만 현실적으로 이사회와 주주들을 납득할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중공업이 거절하는 진짜 이유는 딴 데 있다는 분석이 있다. 건설지원 문제에 관해 MK보다 MJ가 '실(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MK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자동차지분 매입으로 경영권 방어에 유리해질 뿐더러 △현대오토넷 △철구사업부 매입방안은 사업목적에 부합하는 조치인데 비해 계동사옥 매입은 경제성이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간 MH측에 적잖은 지원을 해왔던 MJ진영으로서는 섭섭함이 있을 것이란 얘기다.
◇계동매각안은 수포로 돌아갈 듯=중공업이 발을 빼면서 계동사옥 매각안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대주변의 시각이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데다 현실적으로 '현대'자(字)가 붙지않은 기업이 입주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특히전체 매각가치(1천650억원)의 대부분인 1천300억원이 외환은행 등 채권단에 담보로 맡겨져있어 매각자체가 쉽지않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현대측은 계동사옥을 친족기업이나 계열사가 분할매입하는 형태를 추진하고 있으나 이 역시 담보문제를 해소하지 않고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또다시 '반기'든 상선=현재로서는 계동사옥 매입안을 갈음할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자구안 마련작업이 진통을 겪고 있다. 중공업은 이날 계동사옥 매입안대신 상선이 보유한 중공업 지분(12.43%) 중 500억원에 달하는 3%를 매입하는 방안을제시했다. 건설과 함께 MH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상선이 주식매각대금으로 건설의 기업어음이나 회사채를 사는 형태로 도움을 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그러나 상선의 반응은 냉랭하다. 최근 '상선의 지분매각을 통한 건설 지원' 방안을 건설측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이후 표출된 '항명성' 태도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쉽게 말해 '내 코가 석자'라는 주장이다. 이를 두고 현대주변에서는 상선이 그룹과의 관계를 끊고 독립경영체제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시각과 함께 상선을 '매개'로 한 MH의 그룹지배구도와 관련된 고도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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