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칼럼(고려대교수·경영학)

입력 2000-11-06 00:00:00

정부와 민주당이 2002년부터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로 확정한 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많은 중소기업가들이 거센 반발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재의 연수생제도에 비해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10월26일 대전의 한 공장에서는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던 23세의 베트남 여성이 30세의 한국인 동료에게 폭행당해 생명을 잃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다. 한편 노동부와 이주노동자 NGO들은 연수생제도가 기본 인권 침해는 물론 현장 이탈과 불법취업을 촉진하는 온상이라고 보고 연수생제도 폐지와 함께 고용허가제 시행을 거듭 주장해왔다. 벌써 이런 싸움은 크게 세번째다.

물론 노동부의 최종안조차 당초의 취지가 많이 퇴색되었다. 당초 취지란 이주노동자에게 연수생이 아니라 정식 근로자 신분을 부여하고 국제법 기준에 걸맞게 노동3권을 보장하며 한국인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들의 거센 반발에 1년 단위 계약 갱신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고용불안과 사실상의 노동3권 봉쇄라는 한계를 갖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평등을 위해 노력해온 NGO내에선, 그래도 노동부안이 연수생제보다는 낫다는 입장과 '무늬만 고용하가제'이기에 수용 불가 입장이 모두 나왔다.

사실 나라 일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처리되기에 실로 안타깝다. 차라리 원래의 정당한 취지가 관철되든지 아니면 차라리 무산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관철되면 좋고 무산되면 다시금 힘을 모아 집단적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적이고도 물질적인 이익에 눈이 어두운 집단들의 반발 앞에 무늬만 새로운, 그러나 내용은 여전히 억압과 착취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제도가 최종안으로 확정되면 김이 확 빠진다. 그나마 지속적인 저들의 반발과 로비 앞에 무늬만 새로운, 그러나 내용이 갈수록 퇴화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금, 원래 취지의 고용허가제가 시급하다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정책적 일관성 확립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법무부와 노동부는 사실상 연수생 제도로 인한 불법취업자가 급증 현상을 보면서도 중소기업들의 고충을 헤아려 이를 묵인해 왔다. 여론이 비등해지면 가끔 단속하다가 또 자진신고후 사면을 반복하는 등 결코 일관성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 전체 이주노동자의 '3분의2가 불법'인 이상한 법칙도 생기게 되었다.

둘째로 이주노동자의 합법적 유입 경로를 넓히기 위해서다. 현재 연수생제 이외는 단순 노동력의 유입이 금지되어 합법 취업 길이 너무 좁다. 만일 '3D 업종'에 30만명의 인력난이 있어 이주노동자 유입이 필요하다면 30만명을 정식으로 도입하여 정식으로 대우하면, 차별 대우, 무단 이탈, 인권 침해가 사라질 것이다. 즉 '인력난'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한다면 공공기관이 책임지고 송출과 관리를 담당하여 이들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이라도 인간다운 노동을 하게 해야 한다.셋째로 연수생제 자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우선 연수생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브로커에게 500만원에서 1천만원의 거금을 내며, 한국에 와서는 기초 기술이나 언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연수 아닌 현장 노동을 한다. 대개 '3D 업종'에서 한국인과 같이 일하면서도 보상은 최저 임금 수준인 '연수 수당'을 받는다. 하루 4시간 이상의 초과노동을 거의 강제 수행하고 토, 일요일 가리지 않고 일해도 65만원 정도다. 그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도 많다. 이 돈으로는 출국 전의 빚을 갚기는커녕 본국의 가족 부양도 빠듯하다. 게다가 이들이 현장을 이탈할까봐 기업주들은 여권을 빼앗고 월급의 일부를 반강제로 적치한다. '인권'침해가 심할 수밖에 없다. 기업주들도 이들이 도망가면 중기협에 낸 보증금 30만원씩을 떼이는데다 생산도 차질이 있기에 감시를 엄하게 한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조화를 내세운 정부의 취지와 모순되게 말이다.

결론은 물질적이고 단기적인 이익만을 대변하기보다는 보편적 인권과 노벨평화상 수상국에 어울리는 정책들을 선택하고 추진해야 한다. 더 이상 연수생제도로 인한 인권오명국의 굴레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아가 '무늬만 고용허가제'를 택함으로써 '자기 기만'의 우를 범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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