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부실기업 퇴출 분석

입력 2000-11-04 15:11:00

채권단이 3일 발표한 부실징후기업 처리 결과는'대마불사'의 그릇된 관행을 끝내 버리지 못한 채 구조조정 의지를 무색케 하는 말잔치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강하게 받고 있다.

부실기업에 대해 원칙대로 처리함으로써 금융권 잠재부실을 걷어내고 구조조정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은행권의 벽에 부딪혔다는 평가다.

정상기업으로서 청산·법정관리 판정을 받은 기업이 불과 9개밖에 안된다는 채권단의 판정을 과연 국내외 투자자들이 동의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은 정부 스스로 규정한 마지막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법정관리·청산 기업 총신용공여 11조4천억원=법정관리·청산이 결정된 29개사에 대한 금융권 총신용공여 규모는 11조4천532억원으로 집계됐다.

민간연구기관 등이 2차 기업퇴출을 앞두고 국내 금융권의 잠재부실 규모를 40조~50조원 정도로 추정했던 점에 비춰보면 이번 잠재부실 현실화 규모는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해 청산을 위한 법정관리 보다는 회생을 위한 법정관리가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한통운(5천227억원)과 동아건설(2조8천355억원)을 제외하면 법정관리·청산 판정 기업들의 총신용공여 규모는 7조원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이미 르노에 매각된 삼성자동차 여신 3조5천억원을 빼면 이번 퇴출발표로 현실화되는 잠재부실은 얼마 안된다.

◆정상기업중 법정관리·청산 판정은 6개사 불과=정상기업으로서 청산 판정을 받은 기업은 광은파이낸스·기아인터트레이드·삼성상용차·양영제지·한라자원·해우 등 6개사에 불과하다. 대한통운과 영남일보는 법정관리 판정을 받았다.

정상기업중 청산 판정을 받은 6개사는 삼성상용차를 제외하고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소규모 기업이다. 이번 부실징후기업 판정이 아니었더라도 조만간 회사 존폐가 결정날 운명에 처한 기업들이었다는 뜻이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상용차에 청산 판정을 내린 대목이 눈에 띄지만 채권단의 의지라기 보다는 삼성그룹이 상용차를 포기한 데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보는게 정확하다.

◆우방·청구 등 건설업체, 법정관리 피난처속 연명=이번 2차 퇴출기업은 업황이 침체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건설업종이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러나 우방·청구 등 현재 법정관리중인 기업들은 법정관리를 계속하기로 하고 동아건설은 법정관리의 틀에서 회생을 시도할 것으로 보여 굵직굵직한 건설업체들은 다 빠져나갔다.

현대건설도 유동성문제 재발시 즉시 법정관리에 넣는 방법으로 처리하겠다는 '유보적'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시적으로 면죄부를 준 셈이다.

문제는 건설업 침체가 지속될 것이며 건설업체의 수익성 저하가 가까운 시일내 반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냉정한 판단을 '법정관리'라는 형식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고합·갑을·진도·성신양회·대농·조양상선 등 회생판정 기업들 처리결과가 관건=채권단이 조금만 더 지원해주면 살아나거나 매각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채권의 상당액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이들 기업의 향방이 기업구조조정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일단 이들 기업을 정상가동하면서 매각하거나 경영호전을 꾀하는 것이 당장 정상화 절차를 중단하는 것 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물론 일부 기업이 외부 경영환경 호전과 추가적인 자구계획을 내세우며 퇴출판정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정상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어도 1년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기업이 많다.

그러나 워크아웃 기업들의 경우 2년 가까이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모두가 자산매각을 추진해왔으나 매각이 성사돼 워크아웃을 벗어나는 기업들은 10개중 1개사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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