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벼랑끝 경북교육(2)

입력 2000-10-19 12:03:00

'교육 탈농'은 단순히 학생 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 학교 교육의 뿌리를 뒤흔들어버린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공부에 열의를 보이는 학생은 소수. 대부분 외지로 진학하지 못한 데 대한 소외감을 느끼며 학교생활을 통과의례처럼 여긴다. 교사들 역시 몇번씩 학생들에게 매달려보다 의욕을 잃고 포기하게 된다. 학교교육 전체가 지극히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교직경력 20년이 다 돼 간다는 영덕의 한 고교 교사는 "몇 년 사이 교단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떠날 생각은 않았는데 요즘 학교 꼴을 보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번씩 든다"고 말했다.

"외지에 진학하지 못하고 남은 학생들 가운데 공부에 열의를 보이는 학생은 몇 안 됩니다. 수업시간에 차라리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고마울 지경이죠. 학생지도는 사실상 포기했어요. 무엇 때문에 교실에서 학생과 교사가 만나는지도 알기 힘든 지경이지요"

실제 영덕군내 일부 고교 정문에서는 등교시간이 훨씬 지난 오전 9시30분쯤. 가방도 없이 터덜터덜 걸어오거나, 휴대폰을 두드리며 느긋하게 들어오는 학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교육부의 두발 자율화 지침이 나오자 그동안 어렵사리 바로잡아온 학생들의 머리도 금새 제멋대로가 됐다.

교사들도 탈농으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안동의 한 고교 교사는 "매년 10월부터는 외판 영업사원처럼 산다"고 털어놨다. 안동은 비평준화지역이어서 고교간 우열이 뚜렷하다. 안동고의 경우 지원자가 넘쳐 고민이지만 여타 학교들은 매년 이맘때만 되면 학생 모으기에 혈안이 된다.

수업과 학생지도는 뒷전. 조를 짜 중학교를 분담하고 학생유치에 협조해줄 것을 호소한다. 식사대접, 기념품 제공 등도 때론 필요하다. 밤이 되면 당일 활동상황을 보고하고 다음날 활동계획을 정한다. 이같은 교사들의 세일즈는 원서접수 마감까지 계속된다.

외지로 가지 못한 학생들, 머리 수 채우기 식으로 줄을 서서 입학한 학생들에게 교사들이 아무리 의욕을 갖고 덤벼들어도 보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실업계고 한 교사는 "정규 교과과정을 제대로 이해해내는 학생이 한반에 많아야 5~7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멍하니 딴 생각을 하는 게 수업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3년째 교재와 수업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려 노력도 않는 아이들을 포기한 상태라는 것이다.

외지로 진학하는 학생들이라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달라진 교육환경,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시골에서 1, 2등을 하다가 도시에 가서 20, 30등을 할 때 느끼는 허탈감과 높은 벽을 이겨내기란 10대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영천, 청송 등지의 성적이 우수한 중3학생들은 고교에 진학할 때가 되면 때아닌 스카우트 제의에 혼란을 겪는다. 포항, 안동 등지의 고교에서 장학금과 기숙사를 제공하는 등 특전을 부여하면서 입학을 권하기 때문.

여기에 이끌려 고교를 선택하고 나면 괴로움이 시작된다. 각종 특전을 계속 받기 위해서는 머리를 싸매고 도시 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다 성적이 떨어지면 장학금이 취소되기도 한다. 물론 이를 악물고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학생도 적잖이 눈에 띈다. 이들은 대개 고향에서의 고교 생활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부적응 학생이 되고 만다.

영천의 한 학부모는 "조건이 좋아 포항의 한 사립고에 진학시켰는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 결국 되돌아오는 경우를 얼마 전에도 봤다"며 "우수 학생을 유치하려는 고교들의 비뚤어진 욕심에 학생의 삶이 희생되는 꼴"이라고 씁쓸해했다.

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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