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에세이-우리민족과 노벨 평화상

입력 2000-10-14 00:00:00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벨상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특히 40대 이전 세대들은 어린 시절 사소한 장난질을 하다가도 불가능한 일이 닥치면 그걸 두고 "○○하면 노벨상 받지"하는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을 한번쯤은 가지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한쪽 귀퉁이에 사는 우리들에게 노벨상이란 막연한 동경 그 자체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올림픽도 개최하면서 우리도 노벨상 수상자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키워왔다. 말하자면 노벨상은 우리 모두의 상인 셈이다. 드디어 그 상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수여된다는 소식이다.

평화상은 노벨상의 여느 부문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경제학상이나 문학상 등은 개인의 업적에 국한된 것이라면 평화상은 상당히 정치적인 상이다. 상당수의 평화상 수상자들은 정치인들이고, 정치인들의 활동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된다. 테레사 수녀 같은 개인활동가들도 수상자가 되긴 했지만 드문 편이다. 물론 노벨위원회 쪽에서도 정치적 고려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이번 김 대통령의 수상은 남북 화해 조성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노벨 평화상은 우리 모두의 상

그렇다. 노벨상이 우리 모두의 상이었거니와 노벨 평화상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김 대통령의 수상 소식에 내 일처럼 기뻐한다.

동시에 김 대통령이 민주화나 남북문제에 많은 원론적 노력을 기울였던 것처럼 국내문제에도 같은 노력을 해주길 기대한다. 수상자 발표가 있던 날 현실경제 지표인 주가는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고, 이미 정권 초부터 시비대상이 된 지역 편중인사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의료정책이나 경제정책 등 여러 정치적 쟁점들도 우리를 헛갈리게 한다.

호남출신 정권이 들어서면 지역갈등이 해소될 줄 알았으나 오히려 갈등이 더 깊어진 감조차 있다. 인사뿐만 아니라 정치적 명분론이 한 쪽으로 쏠려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혹자는 지적한다. 오래된 보혁(保革)대결이 다시 살아나고, 통일과 반통일 세력으로 편가르기를 강요한다. 상당수 사람들이 통일을 원하는데도 반통일 세력으로 몰리고, 가진 것도 없는데 기득권층이라는 명패가 붙는 경우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런 이상스런 편가름 현상은 사람들의 가슴에 앙금을 맺히게 한다.

◈이제는 국내 문제 해결에 눈돌릴때

우리나라는 이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분을 대통령으로 가지게 되었다. 노벨 평화상이 우리에게 꿈의 대상이었던 만큼 김 대통령의 차후 행동도 더 한층 날카로운 주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김 대통령의 행보에 따라 우리가 어릴 때 "○○하면 노벨상 받지"했던 우스개가 "○○하는데도 평화상 받나?"하고 바뀌어질지 알 수 없다.

조금 시일이 지나면 사람들은 노벨 평화상의 화려한 상징에 취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김 대통령이 남북의 평화조성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고 해서 실타래 풀리듯이 남북문제가 술술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지난 94년에 아라파트 PLO의장과 이스라엘 라빈 총리가 팔레스타인 평화문제로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르웨이로부터 평화상 수상자 공식발표가 있던 시점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면전(全面戰)이 임박했다는 소식도 함께 날아들었다. 화(和)냐 전(戰)이냐는 것은 이후에 하기 나름인 것이다.

◈남북문제 성급한 기대는 금물

오늘,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부터 가꾸어왔던 꿈의 한 부분을 이루었다. 그리고 남북의 평화문제가 밀레니엄 세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임을 새삼 실감하였다. 유라시아 대륙의 한 귀퉁이에 사는 우리 민족에게 온 세계가 보내는 시선이 오늘따라 무척 따듯하게 느껴진다.

소설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