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정권 초월한 남북관계 개선을

입력 2000-09-15 00:00:00

오늘로서 남북간의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3개월이 지났다. 이 날을 기념하듯 김용순 북한노동당 대남 담당비서가 방한하여 제주도, 경주 불국사, 포항제철 등을 둘러 본 후 김정일과 김영남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비롯하여 이산가족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장관급 군사회담과 경제실무회담 개최, 북측의 경제시찰단 방한,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 공동추진 등에 합의하였다. 그동안 남북관계 진행상황을 보면 이산가족 상봉, 장기수 송환, 평양교예단과 교향악단의 서울 공연, 남측 언론인의 방북, 남북한 합동 방송 등이 이루어지고 대북식량지원,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백두산~한라산 교차관광, 그리고 현대의 개성공단 건설 등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관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이번에도 과거처럼 '반짝 쇼'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1970년대 초 7.4공동성명 발표, 1980년대 중반 북한의 수해물자 접수 후 이산가족 상봉, 1990년대 초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시기에 남북한이 2, 3년 동안 대화와 협력을 활발히 진행하다가 다시 대결과 반목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이번에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첫째,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의도를 잘 헤아려야 한다.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남측의 도움을 얻어 경제난을 완화하려는 것인지, 내부 체제 정비를 위한 것인지, 또는 남한 카드를 활용하여 대미, 대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인지 등을 철저히 검증해 나가야 한다. 우리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그가 펼치는 정책의 본질과 방향을 분석해야 한다. 그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집단농장의 점진적인 해체 정책이 마련된 것인지, 대외경제개방에 필수적인 대미, 대일 관계 개선 정책이 있는지 등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우자 미국의 레이건 전대통령이 제시한 "(소련을)믿어라, 그러나 철저히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교훈을 우리 정부도 되새겨야 한다.

둘째, 우리 정부는 대북 협상에서 북한에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협상 원칙과 함께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남북회담의 개최 여부가 전적으로 북측에 달려 있다거나, 북측의 지나친 요구를 들어주거나, 북측이 남측 반대당 총재의 발언에 대해 시비를 걸어도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 점은 시정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 정부가 돈으로 남북간의 화해를 추진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더욱이 지난 3개월 동안 전시용 행사가 너무 많았고, 또 너무 서두르는 감이 있는데 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제도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왜냐하면 최근 남북간의 합의사항은 거의 모두 기본합의서에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팽개치고 정권마다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내게되면 정권을 초월한 남북관계 개선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점은 우리 정부가 대북 정책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제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과거에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다음 정부에서 지난 정부의 남북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 정부가 대북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수구적', '반통일적', 또는 '반민족적'이라고 몰아 붙이거나, 대북 사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남북관련 행사를 지나치게 홍보 위주로 하거나, 국회의 반대를 두려워하여 국회 동의 없이 대북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경우 현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과거처럼 '반짝 쇼'로 끝나 버릴 것이다.

한림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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