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마저 떠나면 우리 목숨은 어쩌나"

입력 2000-06-23 15:36:00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병의원의 폐·파업이 길어지면서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응급 환자들에 대해서조차 의료진의 일손 부족으로 제때 수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학병원을 지키고 있는 전문의(교수)들까지 23일 낮부터 응급실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자, 환자들은 "혹시나 치료시기를 놓쳐 큰일 당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에 빠져 들고 있다.

간경화로 경북대병원에 입원 중인 손모(42·여)씨는 병증이 악화되고 있지만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안타깝게 시간만 보내고 있다. 두달전 퇴원했다가 병세가 다시 나빠져 지난 17일 입원, 정밀검사와 치료를 요구했지만 병원측의 답변은 "일손이 부족해 응급조치 외에 다른 치료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20일 대구 동산병원에 입원한 권모(18)군은 전신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안되는 심근 확장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지만 수술을 못받고 있다. 권군의 부모는 "혹시나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고 했다.

22일 새벽 교통사고를 당해 대구가톨릭병원 응급실로 실려온 박모(47·대구시 읍내동)씨는 초음파검사 결과 위급한 장파열로 판명됐으나 수술은 오후 1시가 돼서야 이뤄졌다. "수술이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이 위험했다"는 의사의 말에 박씨의 아내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냥 놔두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는 무서운 암을 가진 환자들도 입원만 했을 뿐 수술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는 기약 없다.

위암 수술 후유증으로 복수가 찬 최모(48·성주)씨는 영남대병원·경북대병원 등 여러곳에 전화를 했으나 응급실이 찼다며 거절당한 뒤 겨우 동산병원에서 베드를 차지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이를 입원시킨 부모들은 더욱 가슴이 무겁다고 했다. 교수들까지 진료를 않겠다는 23일 오후부터는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다. 가톨릭병원에 장염으로 딸을 입원시킨 김모(31·여)씨는 "회진이 하루 한번으로 줄었다"며, "언제 아기에게 탈이 날지 노심초사한다"고 했다. 노모(31)씨는 '가와사키'라는 열병을 앓는 세살바기 애기를 동산병원에 입원시킨 뒤, 22일 아침부터 아기의 다리에 붉은 반점이 생겼으나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의사를 불러달라고 부탁했지만 하루종일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의사 폐·파업과 관련된 사망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신부전증 환자 정동철(39·서울 미아동)씨는 병원의 진료 거부로 12시간 동안 제대로 진료를 못받다가 20일 오전 겨우 국립의료원에 입원됐으나 22일 오후 2시쯤 숨졌다. 유족들은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국가와 의사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키로 했다.

부산에서는 21일 농약 자살을 기도했던 30대가 뒤늦게 스스로 119에 전화했으나 2시간에 걸쳐 4군데 병원을 거치는 사이에 숨졌다. 전남 영암에서는 22일 고혈압 환자 신모(60)씨가 자신이 다니던 병원이 문을 닫은 것으로 단정하고 보건진료소를 찾았다가 비관적인 이야기를 들은 후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졌다.

임시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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