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2개정당 영호남 양분화의 의미

입력 2000-04-28 15:08:00

지난 13일 실시된 제 16대 국회의원 총선은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과 영남과 호남에서의 한나라당과 민주당 각각의 완벽한 '싹쓸이'승리라고 하겠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초기에는 불법적 선거운동의 하나로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이 갖는 정당성 때문에 초법적(超法的)인 타당성을 갖는다는 대통령의 발언이나 정치권에 대한 일반시민의 불신을 등에 업고 이렇다할 법적 제재를 받지 않은 채 지속될 수 있었고, 총선연대가 자부하듯 선량으로서 부적격한 자들을 낙선시키는데 의외의 성과를 올렸음이 사실이다. 시민단체 선거운동의 적법성 여부는 사법부에 의해 가려지겠지만 시민단체가 행사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의 가능성은 이번 총선을 통해 충분히 증명됐다.

##시민단체의 무서운 힘

물론 시민단체의 지지 혹은 반대운동은 더욱 세련돼야 하겠지만 시민단체의 집중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입후보자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지리라는 것이 이번 선거의 중요한 교훈이다. 16대 국회의원의 원내 활동이 시민단체의 지속적 감시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치는 진일보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이번 선거의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칼로 자른 듯한 영호남의 지지정당 차별화다. 영남지역은 한나라당 후보를, 호남지역은 친여를 표방하는 4명의 무소속을 포함 민주당 후보를 단 1석의 예외도 없이 선출, 특정지역을 특정정당이 싹쓸이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기이한'현상을 지역감정의 격화로 설명하면서 영호남 갈등의 심화를 우려하고 있다. 특정지역에서 특정정당의 후보자가 공천되면 자질이나 성향에 상관없이 당선될 것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어왔지만 이같은 소문이 현실로 나타난 지금 우리는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전근대적 맹주 정치

특정지역에서 그 지역출신 후보자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유럽연합의회의 경우, 독일지역에서는 독일인, 프랑스지역에서는 프랑스인,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인이 선출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들 의원을 그들의 정치적 성향,즉 보수와 진보, 환경정책 등에 대한 입장,즉 그들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경우 호남에서는 민주당,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이 완승(完勝)했을까? 우리는 이들 두 개 정당의 정치적 경향성의 차이가 영호남을 확연히 구별지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실제로 이들 두 개 정당에서는 남북문제 등 한두 개의 정책현안을 제외하고는 완급(緩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정책상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 나타난 영호남 양분화의 원인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필자는 2개 정당에 의한 영호남 양분화 현상이 우리나라 정당이 갖는 전근대적 맹주(盟主)정치 때문이라고 본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공천과정에서부터 선거에 이르기까지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수나 총재의 일사불란한 지휘통제하에서 움직여왔다. 공천과정이나 비례대표 선발과정에서 나타나는 비민주성과 의외성이 이같은 맹주의 전횡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맹주에 의해 선발된 후보는 당연히 자신의 독자적 자질보다는 맹주의 성격이나 정치적 경향성에 의해 채색된다. 특히 특정 맹주가 강력한 영향력과 캐릭터를 가지면 유권자는 맹주에 대한 호오(好惡)의 감정에 따라 투표한다.

##정책정당으로 거듭나야

이번 총선의 영호남 양분화 현상은 특정지역의 이해관계가 바로 맹주정치와 연계해 일어난 현상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번 선거가 보여준 영호남 양분화 현상을 단순한 지역감정의 심화로 개탄만 하기보다 각 정당이 정강정책으로 차별화되는 정책정당으로 거듭나야 할 뿐만 아니라 지구당이 중심이 되는 공천의 민주성을 확보하여 정당정치의 정상화를 이루는 하나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도 인물에 대한 개별적 평가보다 정당에 대한 총합적 평가에 근거할 때 더욱 큰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