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렬 세상읽기-봄꽃 단상

입력 2000-04-25 15:41:00

가뭄과 산불, 구제역으로 온통 어수선한 봄이지만, 봄은 봄이라는 듯이 활짝 핀 꽃들이 교정에 가득하다. 봄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 봄의 꽃 소식은 예년과 달라 보인다. 지난봄만 하더라도 개나리.진달래.벚꽃이 차례로 피었는데, 올해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개나리.진달래.벚꽃이 한데 어우러져 피었다. 그 모든 꽃들이 만발한 교정은 그 어느 해보다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정경에 취해 강의실로 향하던 도중,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그러나 기대하지 않던 꽃향내가 코끝을 스친다. 문뜩 눈을 들어 바라보니 이것이 웬 일인가. 라일락까지 함께 핀 것이다. 지난봄에는 벚꽃이 지고 난 다음 그때서야 비로소 라일락의 향내가 교정을 뒤덮기 시작했었지. 세상에! 온갖 봄꽃이 경쟁하듯 한꺼번에 핀 것이다.

이렇게 온갖 봄꽃이 한꺼번에 다 피면, 지는 것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의 비슷한 시기의 일이 되겠지. 모든 봄꽃이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지고 나면 남은 봄은 어떻게 지낸다지? 남은 봄 내내 별다른 꽃 소식이 없이 지내야 한단 말인가, 지루하게 초여름의 아카시아 꽃을 기다리며.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온갖 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체험하게 되면, 남은 세월이 그 얼마나 지루하랴! 조금씩, 또 조금씩 아름다움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삶이 더 할 수 없이 행복한 삶이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온갖 봄꽃이 어우러진 그 찬란한 정경을 바라보노라니, 갑자기 그 아름다움이 마음에서 떠난다. 아름다움도 저렇게 한꺼번에 찾아오면 그것이 비록 순간 더 할 수 없는 감동을 줄지라도, 그 다음의 지루함을 견디어야 할 것이기에. 그러나 한꺼번에 핀 아름다운 꽃들이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단지 남은 봄의 지루함을 견디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가 알랴, 아카시아 꽃도 제 시기를 잊은 채 바로 내일 필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다만 일시적인 현상일까. 행여 자연이 인간의 학대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상 징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흔히 말하듯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한데 어우러져 핀 꽃들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찬란한 아름다움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찬란하게 아름다운 꽃들이 아직도 그 빛으로 세상을 환하게 하던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4월 22일로 30주년을 맞이한 '지구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 대구, 광주, 수원 등지에서 '차 없는 거리'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차 없는 거리' 행사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 연료의 남용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이 행사 장면들을 담은 각 신문의 보도 사진들은 온갖 봄꽃들이 연출하는 정경만큼이나 화려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행사 장면들이 화려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자는 명분 아래 제정된 '지구의 날'을 화려하게 기념한다고 해서 정말로 하나뿐인 지구가 보호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행사가 그렇지만, 행사 당일이 지나면 행사의 의미는 곧 잊혀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하루 동안 차가 없던 거리들은 행사 다음날부터 수많은 차로 메워질 것이다. 행사에 참가했든 참가하지 않았든 사람들은 온 거리를 차로 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빤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과성의 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이다. '차 없는 거리' 행사보다 화석 연료의 남용과 관련하여 개선책이나 대안을 연구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30년을 이어온 '지구의 날' 행사는 앞으로 그런 종류의 연구를 장려하고 소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지속적인 관심을 북돋우고 일깨우는 행사들이 계속될 때, 봄꽃의 아름다움을 봄 내내 조금씩 아껴가며 즐길 수 있는 미래가 우리에게 기약될 것이다.

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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