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칼럼-산실의 남편

입력 2000-04-03 14:30:00

의대생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새로운 병을 배울 적 마다 '그게 내 병은 아닌가'하고 걱정을 하게 된다. 시체 해부를 할 적엔 애인도 보고 싶지 않다. '너도 죽으면…'하는 심정이 돼 아름다운 환상이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꽃다운 나이에 죽어가는 환자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치료라는 이름으로 젊은이의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는 수술을 지켜보면서 의대생들은 심각한 회의에 빠지곤 한다.

나의 경우 산실에서의 출산과정을 지켜 본 경험은 가히 충격이었다. 병아리의사로선 형언하기 어려운 '실망감'이었다. 다행히 정신과를 전공하게 되면서 의대생 증후군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최근 마음 약한 남편들의 딱한 호소에 접하면서 이 글을 조심스레 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아내 출산때 산실에 함께 들어가 출산의 고통을 나누려는 남편들이 늘어나면서 그에 관련된 남편들의 정신과 상담이 드물지 않아졌다. 첫 아기 출산 후 아내가 더 믿음직스럽고 고맙긴 한데…. 하지만? 그전처럼 사랑스럽고 신비스런 구석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만은 안봤었어야 하는 건데….

나를 찾아온 어느 마음 약한 남편은 거의 울먹이듯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아내에겐 도무지 성적(性的) 매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난 그게 무슨 뜻인줄 알 것 같다. 나의 병아리 의사시절의 경험으로 말이다.

아내와 함께 산고의 고통을 나누는 건 남편으로서의 인간적 의무이기도 하다. 밖에서 초조히 기다리느니 함께 산실에 들어가 격려하는 건 아내의 두려움도 줄이고 심리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여기까진 좋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은 바로 보지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무슨 의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마음 약한 남편들의 정신적 후유증이 두려워서다. 모성으로서의 아내일 뿐 신비스런 아내로서의 이미지가 가시기 때문이다. 출산현장을 지켜본 남편들 중엔 잠자리도 그전 같지 않고 성적 감각이나 감성적인 면에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하소연이 적지 않다. 출산 당시의 그 모습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붓고 찢기고 출혈하고 게다가 태아의 괴상한 모습과 후산(後産)의 핏덩이…. 젊은 시절부터 간직해온 환상이 그 순간 다 무너지는 것이다.

출산은 숭고한 것, 신성한 것, 부부 두 사람만의 애정의 결실이다. 그렇다. 하지만 마음약한 남편들에겐 땅이 꺼지는 듯한 신음소리, 비오듯한 땀방울, 그 처절한 산고의 현장이 충격일 수밖에 없다. 인류가 동물의 한 종(種)임을 실감할 수 있는, 너무나 생생하고, 진한, 동물적인 순간이다.

이런 표현이 자칫 결례일 수도 있고 여성들이 들으면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이게 마음 약한 남자들이 느끼는 심정 그대로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강하고 오래 사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산고의 과정을 남자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과 힘이다. 어떤 남자도 절대로 여자를 이길 수 없다는 실감이 절로 난다.

하지만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남성의 꿈과 낭만, 신비스런 여성에의 동경에 대한 이러한 꿈이 출산과 함께 가신다면, 그리고 마음 약한 남성에게 상흔을 남긴다면 두 사람을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 여성들이 화낼지도 모를 일을 굳이 써야하는 까닭은 그래서이다.

다시 사랑스런, 신비스런 베일에 가린 아내가 되어야 한다. 요즈음 성교육은 '숨길 게 없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성의 신비스런 구석마저 앗아가는 우를 범하고 있다. 때로는 분만현장에 아이까지 참여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 덕분에'아이가 어디서 나오느냐?'는 질문을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은 둘만의 은밀한, 은근스런, 신비의 베일에 가리워져야 정녕 성이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정신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