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최우수

입력 2000-03-24 14:21:00

요즘 시내 중심가에 나가서 주위를 둘러보면 이곳이 정말 대한민국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거리의 사람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영어가 적힌 옷을 입고 거리의 간판들도 경쟁하듯 영어로 적혀 있다. 시내 중심가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적한 산골 마을의 이정표에마저 영어 표기가 붙어 있다. 이런 무분별한 영어 사용의 관습 속에서 우리의 사고마저 미국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정이 이러한데 이제 사회 일각에서는 영어 공용어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우리말이 공개적으로 영어에 위협당하는 위기를 만나고 있다.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글로벌화시대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영어의 공용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세계는 기술의 발달로 국경이 무의미해질 만큼 교류가 활발하고 또한 문화가 하나의 상품이 된 현대 사회에서 더 많은 경제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영어 사용을 지금보다 더 일반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영어로 표현된 한국문화가 그만큼 보편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상들이 한자를 도입하였듯이 영어를 도입하자고 말한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인식의 지평을 세계적 차원으로 넓히는 기회로 삼자는 주장을 내세운다. 요컨대, 그 길이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위한 길이라는 것이다.

분명 다가오는 세계화 시대에서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활발한 교류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그 속에서 경쟁을 통하여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세계화 시대의 경쟁에 뛰어들게 되지도 않을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 이 문제는 교류와 교역 및 협력을 위한 영어 구사는 그러한 일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을 위해서는 누차 지적된 몇십 년 영어를 공부하고도 외국인을 만나면 피하기부터 하는 현재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급한 일이다.

세계가 좁아지고 교류가 활발할수록 우리에게는 우리 고유의 전통과 사상을 지켜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언어는 그 나라, 그 민족의 문화를 반영한다. 그리고 문화는 그 민족의 생활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민족의 생활, 사고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언어를 남의 것을 쓴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문화를 완전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를 쇠퇴시킬 수도 있다. 영어로 우리 문화를 세계에 충분히 알리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며 영어로 표현된 한국 문화가 더 보편화되는 것도 아니다.

고유 언어의 사용은 소속 집단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게 한다. 정체성은 사회가 존속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가져야 한다. 소속감을 형성하는 데는 하나의 공통된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는 사회를 하나로 묶는 기능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단일 민족으로서 우리가 사용해 온 우리말은 이러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왔던 것이다. 섣부른 영어 공용어화는 우리를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방황하는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언어는 단순한 의사 전달 도구가 아니다. 우리말은 우리의 생각을 나타내며 우리 문화를 다듬고 보존하며 우리를 하나로 엮어준다. 세계화 시대가 될수록 우리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이 요구된다. 한국인은 한국 문화를 지닐 때 가장 한국인답다. 얼굴은 인디언이지만 청바지를 입고 콜라를 마시며 영어로 말하는 인디언의 모습이 뒷날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유재환 덕원고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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