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새판짜기-(1)교육

입력 1999-11-16 14:00:00

새로운 세기의 시작은 단지 연도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냉엄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가정, 기업, 학교,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어떤 각오와 태도로 새 세기를 맞아야 할지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입시제도만 이리저리 뒤집기

◇백년하청(百年河淸)인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미래지향적 교육을 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에 걸맞은 교육방향은 어떤 것일까.

물론 대답도 많고 주장도 넘친다. 크고 작은 위기가 올 때마다 우리는 '변화'와 '개혁'이라는 용어를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입시제도만 이리저리 뒤집었을 뿐 교육의 '대학지상주의'와 사회내의 '학벌주의'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2002학년도 새 대입제도도 현장에 들어가보면 "뉘 집 얘기냐"는 시큰둥한 반응 일색이다. 올들어 교육계에 나도는 가장 통렬한 농담. 과열입시를 막기 위해 서울대가 '구구단 외우기'로 신입생을 뽑는다고 발표하면 어떨까. 그러면 당장 그날 오후 전국 학원가에는 '구구단 잘 외우는 법' '구구단 빨리 외우는 법' '구구단 잊지 않는 법' 등의 과목이 줄줄이 개설된다. 1주일 쯤 지나면 '구구단 왕도' '구구단 정석' '구구단 길라잡이' 등등의 책이 출간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것이다. 어차피 선발이 목적이라면 대입제도를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문제의 근본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공동체 건설이 유일 대안

◇교육주체가 만드는 교육공동체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주체들을 수동태로 남겨둔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교육개혁은 뿌리부터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도로 개인화되고 정보화되는 21세기에는 모든 주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2000년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2004년까지 모든 초·중·고가 도입하게 될 제7차 교육과정을 살펴보자. 초교 1학년부터 고교 1학년까지 10학년 단위로 기본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고교 2·3학년은 학생 선택 중심교육을 도입한다.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이라는 기본방향이나 창의성 및 정보능력 배양,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배양, 수준별 교육 등 골격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교원의 사기저하, 교실 붕괴, 사제간 교사·학부모간 신뢰 상실 등 황폐화한 현 교육여건 아래서 얼마나 제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교육전문가들은 구체적인 개혁방안으로 교육정책 입안·시행자 및 지도자의 비전과 함께 부모의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 해소, 교사·학교의 주체감 확립, 매스컴의 교육지향적 기능 강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교육주체들이 함께 건설하는 교육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개선과 변화를 모색하는 것만이 위기를 넘어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학교-지역사회 통합도 필수적

◇ 정보화시대의 요구

그렇다면 갈수록 세분화되고 다원화되는 사회에서 각 교육주체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눈앞에 성큼 다가온 정보화가 유력한 해답으로 떠오른다.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실 속에서는 배움이 꼭 교실에서, 교사의 지도 아래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서도 비인간화되지 않고 최고의 교재로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길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교육자의 역할은 정보화에 비례해 증대한다. 교사는 학생이 자신의 관심영역에 보다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고 길을 제시해줘야 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강의와 수업자료를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학생들이 학과목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학부모는 이제 아이의 발달과정과 학습성취도, 관심분야 등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교사와 검토하고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얼굴을 맞대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마다 네트워크를 통한 전자우편, 화상회의 등을 통해 교사와의 유대를 강화시켜야 한다. 또 다른 학부모들과 비공식적인 연구모임이나 지원모임을 만들어 자녀들의 학습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길도 모색해봐야 한다. 단순히 부식이나 금전적 지원에 머물러온 학부모들도 교육의 한 부분을 교사와 공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교육을 통한 학교와 지역사회의 통합을 통해 학교교육의 보다 구체적인 부분까지 개선될 수 있으며 지역사회와 학부모들도 이 과정에서 평생교육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활용 가능성 무한대

◇새로운 형태의 교육

정보통신의 발달은 교육방식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고 이를 가능케 해주고 있다. 종래의 대량생산식, 일방적·주입식 교육 대신 학생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준과 능력에 맞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도 가능성이 보인다.

물론 정보기술은 교육의 보조수단이다. 인쇄된 글, 교사의 말도 여전히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정보기술을 이용해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보다 좋은 짝이나 코치, 조언자를 연결해줄 수 있을 것이고 싫어하는 과목에 대한 호기심도 유발할 수 있다.'설교식 교육에서 경험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교육학자 존 듀이의 주장은 100년이 흐른 지금 정보기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보다 많은 부분에서 실현될 수 있다. 관심 있는 분야가 어디든 학생들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 생생한 사진과 동영상, 풍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다녀온 뒤 며칠이면 잊어버리던 박물관도 궁금할 때마다 찾아들어가 훨씬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의 발달은 교사들을 교단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컴퓨터로 인해 학생들은 예전보다 더 자주 글을 쓰고 더 잘 쓰며 분석능력, 독창적 표현능력 등이 더 높아지고 한층 적극적이 되고 있다.

◈실험의식·위험감수 선결조건

◇인식전환과 용기

중요한 것은 정보기술이 교육의 모든 부분을 책임져 주는게 아니라 보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데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궁극적으로 교육의 질은 가정-학교-사회로 연결되는 교육공동체가 얼마나 많은 합의점을 찾아내고 이를 실행에 옮기느냐에 달려 있다.

현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틀에서는 위기국면을 넘어서기 위한 처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연차적으로 진행되는 교육과정도 지속적으로 바뀌어갈 수밖에 없다.

결국 장기적 교육발전의 관건은 교육주체들의 인식 전환과 용기이다. 촌지, 체벌, 부진아, 따돌림 등 낡은 관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각 교육주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 정책입안자들은 각종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을 통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실험의식과 위험에 대한 감수가 발전의 선결조건이라는 명제는 역사 속에서 검증돼온 진리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도 이 과정 속에서 넓고 깊어진다. 뒤를 돌아보며, 옆을 재가며 망설이다가는 '교육열'만 있고 '교육'은 없는 이류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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