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콩나물은 튼실하기는 하지만 맛이 없어요. 그 옛날 할머니가 직접 길러 주시던 것과 같은 콩나물을 먹고 었던 것이 이 일을 시작한 계기가 됐지요"
경주에서도 가장 오지로 꼽히는 강동면 왕신1리 야산 자락에 '고가네 농산'이라는 간판을 달고 지난달 개업한 콩나물 공장. 이 공장 주인 고재형(高在亨·50)씨는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전국 재계 순위 28위의 강원산업 상무이사였다. 그는 "청춘을 바쳐 올라선 자리를 콩나물과 바꿨다"고 표현했다.
2천명 가까운 직원을 거느렸던 고씨의 현재 부하직원은 단 1명뿐. 콩구입은 물론 재배, 배달, 수금까지 혼자서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탓에 재벌기업을 관리할때보다 훨씬 더 힘들다. 게다가 '물만 잘주면 크겠지' 했던 콩나물 재배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10일에는 다자란 콩나물에 갑자기 병균이 번져 100통을 모두 인근 축산농가에 돼지먹이로 던져줘 버렸다. 고씨는 인체에 거의 해가 없다는 농약을 조금만 뿌리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겠지만 폐기처분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했다. 먹거리만큼은 유해성분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무공해, 무농약 콩나물을 생산키로 하고 3단계로 정수한 지하수와 홍게 껍질 추출성분인 키토산만을 쓰고 있다.
콩나물을 본격적으로 생산한지 1개월여. 고씨는 "우선 보기에 좋은 것을 찾는 소비자 의식이 문제"라고 했다. 무공해 상품은 맛은 좋지만 길이가 짧고 가늘어 육안으로 보는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것.
완전히 자리잡을 때까지는 서울에 있는 집에는 한달에 한번만 가기로 하고 공장 한켠에 마련한 골방에서 지내는 고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성공해 직장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IMF 실직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며 밤낮없이 콩나물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포항·朴靖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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