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할머니의 비손과 E-메일

입력 1999-11-06 14:06:00

지금은 고인이 되신지 오래인 할머니께서는 손자들의 나이가 열다섯살이 될 때까지 생일에 특별히 준비하시는 음식이 있었다. 미역국과 큰 밥그릇에 꾹꾹 눌러담은 찰밥과 차수수팥떡이었다.

수수는 곡식 중에서 제일 키가 크다. 또한 수수는 낱알이 영글어도 밀이나 보리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이것은 수수를 닮은 사람으로 남을 용서는 하되 남에게 고개 숙여 용서받을 짓은 하지 말라는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팥은 그 붉은 빛으로 악귀를 쫓는다는 속설이 있다. 차수수와 팥으로 만들어진 볼품없는 차수수팥떡은 찰음식같이 손자가 속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할머니의 염원이 스민 음식이다.

수수 한 톨도 디딜방아에 찧어야 쓸 수 있었던, 모든 것이 귀하기만 한 6·25직후. 별난 음식을 만지면 동네 사람들에게 다 맛을 보여야했던 시절이었으니 적은 양으로는 엄두도 못내던 때였지만 할머니께서는 손자들의 생일에는 우직하게 그 일을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준비한 음식과 정화수 한 사발을 소반 위에 떠 놓고 손자가 아무 탈없이 자라도록 두 손을 비비며 정성스레 비손을 하셨다. "그저 어린 것이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도록 삼신 할매께서 모든 것을 알아서 보살펴주시고, 어린 것이 사람값 하도록 앞길을 열어 주이소" 그렇게 빌고 또 비시던 할머니. 특별히 믿는 신앙도 없으셨지만 할머니의 비손은 그 지극 정성만큼이나 위력이 있었기에 우리 형제들이 탈없이 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생전의 시어머니께서도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수수팥떡을 만드셨고 나는 그 뒷바라지만 했는데도 꽤나 번거러워 했었다. 물론 시어머니께서는 비손같은 것은 안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손을 위한 정성스런 기도는 하셨을 것이다.

시어머니 돌아가신 뒤로는 나는 아이들 생일날, 번거로운 수수떡을 준비하기보다는 간편한 케이크로 손쉽게 때우는데 익숙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수고로운 음식 장만도 성심을 다한 기도도, 덕담 한마디도 전하지 못한 지난 시간이 아쉽다. 이제부터라도 손자와 유치원 어린이들의 생일에 탄생의 의미를 새기며 E-메일에 마음을 적어 띄울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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