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공직자의 명절 풍경

입력 1999-09-22 14:49:00

수년전 추석암행감찰이 심해진다는 얘기가 떠돌자 지방의 힘있는 관청부근의 '구멍가게'가 수납대행창구로 이용돼 화제가 된적이 있다. 감사원 암행직원이 변장을 하고 관청정문이 훤히 내다보이는 건물옥상에 서 있으니 그 관청직원들이 간헐적으로 문제의 구멍가게에 들렀다 가곤 하는 광경이 목격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빈도가 심해져 뇌리에 번쩍 스치는 '감'에 구멍가게를 나가는 직원을 쫓아가 확인해 본 결과 의외로 많은 액수가 담긴 봉투가 안주머니에서 나와 추궁했더니 결국 기업체가 준 '떡값'이었다는 얘기였다. 5만원 이상의 선물을 금지한 공직자준수사항이 제정된 이후 처음 맞는 올 추석이라 관가에선 '재수없어 걸리면 간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대체로 스산하다. 대수롭잖게 갈비세트나 구두티켓 1장이라도 받았다간 옷을 벗는 험한 꼴을 본다는 강박관념에 바짝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부처 모국장은 갈비선물세트를 받고 고민하다 결국 받기로 하고 더이상은 안된다며 '아내교육'까지 단단히 시켜놓았다는 얘기로 관가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퇴임을 앞둔 한승헌감사원장은 귀향열차표마저 못구해 귀향을 포기했다는 얘기도 있다. 역에서도 특권층 민원을 일절 금지한 결과였다. 배짱파도 있긴 있다. 10여명이 보낸 갈비세트, 상품권 5장, 약간의 현금이 중앙부처 모국장이 받은 목록, 직무와 관련없고 공직준수사항은 아예 문제시 않겠다는 투로 해명한다. 이 국장처럼 백화점선물 배달목록을 뒤지는 정도의 감사활동이 과연 옳은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엄밀한 방법은 얼마든지 '고안'해 낼수도 있고 감시의 눈이 많은 추석전후에 꼭 받을 이유도 없다. 문제는 '공직 의식'인데 아직은 멀었다는게 최근에 공개된 영세중소기업의 뇌물일지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명절단속'은 피라미단속용 정도로는 약효가 있을지 모르겠다. 국회의원들에게 500만원씩의 오리발을 주는 풍토에서 구두티켓 1장을 받은 공직자가 '단속 좋아하네'라며 쓴웃음을 짓는다.승복을 못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모순땜에 '아직 멀었다'는 얘기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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