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변형 농산물

입력 1999-08-09 14:18:00

유전자변형(GM) 농산물 태풍이 곧 전세계에 몰아칠 전망이다.

GM 농산물 생산 및 판매의 주도국인 미국이 유럽과 일본 등의 위해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GM 기술로 생산된 농작물에 대한 신규범'을 제정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오는 11월30일부터 12월3일까지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되는 세계무역기구(WTO)차기 협상이 그 신호탄으로 이 협상에서 미국의 주장이 관철될 경우 GM 농산물은 국제적으로 합법화될 전망이다.

미국은 이같은 의지를 공언하듯 지난달 29일 △GM 농산물 판매를 보호하는 규정도입 △수출보조금 철폐 △관세율 인하를 통한 시장접근 확대 △농업보조금 감축 등 4가지 목표를 관철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 목표중에서 △GM 농산물 판매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규정도입을 제외한 나머지가 94년 종료된 WTO 협상에서 농산물 수출국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항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는 자명하다.

그레첸 스탠튼 WTO 농업상품국 조정관은 "유엔산하 세계보건기구(WHO)나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와는 달리 WTO는 GM 농산물의 안전성 여부보다는 국제교역의 공정성 문제에 주시한다"면서 "오는 11월 시애틀 라운드에서 GM 농산물 통상 문제가 정식의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스탠튼 조정관은 "각국의 수입 규제에 관한 보고서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GM 농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부정적 증거가 적은데 과도한 규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GM 농산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뚜렷한 과학적 증거도 없이 잠재적 위험성을 들어 일반농산물과 차별화하는 것은 무역장벽이라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아르헨티나, 캐나다, 브라질, 뉴질랜드 등 농산물 수출국인 이른바 '케언즈 그룹'도 미국의 입장에 동조한다.

미국은 특히 지난 4월27일부터 30일까지 캐나다 오타와에서 개최된 제27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회의에서 GM 농산물과 이를 원료로 한 식품에 대해 '별도표시(라벨링)'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별도 표시' 자체가 위험성에 대한 간접적인 시인이라는 이유다.

GM 농산물 별도 표시문제는 그동안 미국과 유럽연합(EU)간에 쟁점으로 부각됐던'바나나문제', '호르몬 처리 쇠고기문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 시장 규모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별도표시를 원하는 EU의 주장은 이렇다.

아직까지 GM 농산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지만 잠재적인 위험성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또 뒤늦게 이같은 위험성이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인류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이 안정성 유보 이유다.

따라서 위험성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나름대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주요 작물인 GM 콩과 옥수수, 이를 원료로 한 식품에 대해서는 별도 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EU의 주장이다. EU는 이미 지난해 9월 이같은 라벨링규정을 채택했다.

일본도 이달 4일 GM 식품의 표시의무 대상을 대두, 옥수수, 감자, 토마토와 이를 원재료로 한 제품 등 28개 품목으로 정하고 내년 4월 일본농림규격(JAS)법에 표시기준을 공시, 2001년 4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EU, 일본 등도 아직까지 이같은 라벨링 제도를 실시할 수 있을 정도의 GM 식품 식별 기술이 충분하지 못하다.

특히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 GM 농수산물 라벨링을 규정한 우리나라의 수준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내 기술은 현재 제초제에 대해 내성을 가지고 있는 콩(몬산토사가 개발) 한 품목만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쌀을 제외한 주요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GM 농산물 방어대책은 거의 제로 상태인 셈이다.

GM 농산물은 92년 중국이 바이러스 내성 담배를 첫 상업재배한데 이어 94년에는 미국이, 96년에는 아르헨티나, 호주, 캐나다, 멕시코가 뒤를 이었다. GM 농산물 상업재배국가가 2000년에는 20∼25개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GM 작물과 관련된 캐나다 전문월간지 '램스 혼(The RAM'S HORN)의 분석이다.

지난 96년 170만ha에 불과하던 GM 작물 재배면적도 98년에는 세계인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지 2천780만ha로 확대돼 15배나 늘어난 셈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10년후에는 GM 작물을 생산하는 농지가 얼마나 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램스 혼'의 걱정스런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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