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서울 도심을 둘러본 어느 외국 미술평론가가 "빌딩 앞에 웬 쓰레기(?)가 그리 많은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하더라는 기사가 한 미술잡지에 실린 적이 있다. 번쩍번쩍한 빌딩에 쓰레기라니…. 속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그 기사를 읽고 오히려 의아해 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말한 쓰레기는 빌딩을 건축할 때마다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환경조형물'이었다. 그런데 왜 이방인의 눈에는 그 많은 조형물들이 허접쓰레기로 비쳤을까. 많은 돈을 들여 세워놓은 환경조형물이 도시 분위기를 새롭게 바꾸는 조각작품도 아니고, 무표정한 바위보다 못하다니 민망할 따름이다. 그 평론가가 작품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지독한 근시이거나, 아니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문화진흥책의 산물인 우리 조형물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천덕꾸러기 '환경조형물'
이런 상황에서 일이 터졌다. 전 대동은행 본점에 세워진 환경조형물 때문에 한 조각가가 얼마전 검찰에 구속됐다. 작품 설치를 대가로 거액의 리베이트를 주고 받은 혐의다. 사실 이 조형물을 두고 지역 미술계에서는 그동안 말이 많았다. 5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도 돈이지만 조형물의 예술성보다 뒷거래를 의심하는 따가운 눈초리가 많았다. 결국 어두운 구석은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다. 혹시 다른 조형물도 이런 식으로 세워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서울 포스코센터에 세워놓은 세계적인 조각가 프랭크 스텔라의 15억원짜리 조각 '아마벨'도 골칫거리다. 포철측은 작품이 너무 난해한데다 고철 덩어리처럼 보여 기업이미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로 이유로 철거 방침을 정했다. 이 결정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당혹감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제저작권법 시비도 문제고, 공공미술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철거에 반대하고 있다.
작가의 '혼' 깃들어야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환경조형물이 넘쳐난다. 하루가 다르게 세워지는 숱한 아파트에도 이런 저런 조형물이 서 있다. 문제는 아파트 주민 어느 누구도 그 조형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많은 환경조형물이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을까. 작가의 혼이 깃들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진정한 작품을 찾아 보기 힘든 현실과 근시안적인 결정의 갈림길에서 우리 예술문화의 앞날이 어둡다. 파리 에펠탑, 퐁피두센터 등도 건립 초기에는 혹평을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파리지엔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그러나 우리의 환경조형물은 어떤가. 세월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예술가는 '꿈을 먹고 산다'고 했다. 그 꿈이란 고결한 정신 세계로 해석할 수 있다. 시류나 유행에 물들지 않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길. 그것이 예술가의 본령이다. 하지만 요즘 예술가들 중에는 다른 냄새를 풍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향기로움보다는 뭔가 탁한 빛깔도 보인다.
이번 사례에서 볼 때 비록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예술가가 저잣거리의 장사꾼과 다를 바 없다면 예술은 무너지는 법이다. 예술품을 통한 부의 축적은 가능하겠지만 좀이 예술혼을 먹어 들어가기 십상이다. 예술의 타락은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배신감을 넘어 '저주'에 다름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부족한 심미안 탓으로 돌리기에는 우리의 환경조형물에는 뭔가 잘못된 구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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