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타칭 정보부인 텔여사. 남편이 출근하고 집안일을 마무리한뒤 컴퓨터 키보드를 눌린다. '띠리리~'하는 접속음과 함께 일찍 출근한 남편의 쪽지 한줄과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의 글이 인터넷 홈페이지 방명록에 도착해 있다. 그야말로 오늘 기분 짱~.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텔여사는 곧 답신을 띄우고, 살림·육아·자녀교육은 물론 문화정보·프로주부의 성공스쿨·남편 동호회를 샅샅이 훑는다. 남편사이트는 '딴 남편'들의 속이야기를 훔쳐보기에 안성마춤. 다른 남자의 심리를 엿보고 부부금슬을 위해 사이버공간에 사랑을 표현한다.
텔여사의 아들 텔군. 14세에 접어드는 텔군은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웹서핑을 하고, 숙제 역시 컴퓨터로 한다. 텔군이 학교나 공공도서관에 가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료를 인터넷으로 얻는다. 텔군은 얼마전 아버지에게 할말을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안녕 아빠. 아래 사이트를 확인해보세요. http://www. southwind.…'
텔여사, 텔군의 방처럼 미래가족이 쓸 마이 룸은 일차적으로 휴식을 위한 피난처이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모든 생활을 원스톱방식으로 해결해주고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베이스 캠프'
각자의 마이 룸에는 온가족이 함께 쓰는 '가전'(家電) 제품이 아니라 개개인이 별도로 쓰는 '개전'(個電)제품이 자리잡고 있다. 전화·컴퓨터·TV·오디오 등 온갖 개전제품이 들어있는 베이스캠프, 마이 룸은 미래사회의 가족들이 물리적인 벽을 뛰어넘어 세계 어느곳과도 통할 수 있는 접점.
상상속의 미래 가족에서 보듯 21세기 혹은 제3천년기를 변화시키는 한축은 정보사회의 도래. 텔레비전의 등장이 가족관계에 변화를 가져왔듯이 초고속정보망이 가정까지 구축되는 2020년대에는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미래사회의 가족관계도 변화시킨다.
가족들은 개인 외부회선을 보유함으로써 가족원보다 네트워크에 의존한 인간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부모와 자녀세대가 각각 자신의 행동원칙과 시간대를 가짐으로써 가족의 개인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은 뻔한 일. 심지어 부부끼리의 정보도 네트워크를 통해야 알 수 있을랑가?
나이어린 네티즌들과 채팅을 즐겨온 하이텔 동호인 강석주(DJ47)씨는 최근 30세 연하의 '사이버 누나'를 사귀었다. 아이디에 'DJ47'로 나이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한 채팅 여성이 "야, 임마. 네가 50대면 나는 100살이다. 속이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넌 많아야 스무살"이라고 단정지으며 자신을 누나라고 강요했다. 30년 세월을 강탈(?)당하고 22살짜리 사이버 누나를 모셨던 강석주씨의 사례에서 예견되듯 21세기 가족들은 사이버 누나 오빠와 같은 '사이버 친·인척관계'를 쌓아갈지 모른다. 가족·학교·지역이라는 중간집단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맺던 전통적인 방식 대신 네트워크를 통해 연령·학교·지역·계층 심지어는 국경에 상관없이 채팅으로 사이버 가족을 만들고, CC(사이버 커플)도 급증할 듯.
"몸은 가정에 있지만 지속적으로 바깥 사회관계망과 시간을 보냄으로써 가족의 의미가 재정의될 것"이라는 동국대 사회학과 조은 교수는 가족들이 가족매체와 개인매체를 적절히 사용, 맘껏 자유를 즐기면서도 급하면 가족들과 지지를 주고받는 '네트워크형 가족'이 새롭게 탄생하리라고 예고하고 있다.
LG애드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0대들의 35.3%가 "나는 자녀가 결혼한 후 이따끔씩 거는 전화를 제외하고는 어떤 접촉도 피할 것"이라고 응답, 일상적인 가족관계가 단절되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연락을 취하는 '네트워크형 가족'탄생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기도 했다.
정보화의 진전이 가정과 일터의 융합을 초래하고 있어 아내·딸 등 여성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전통적 부계 가족제도는 끊임없이 갈등과 위기상황에 처할 전망. 아내의 활발한 취업으로 더이상 단독 생계책임자가 아니면서 가부장적 위치를 지키고자 하는 남편과 경제력으로 종속적 위치에서 탈피를 원하는 아내들이 끊임없는 세력다툼이 벌이지는 않을지.
'천사표 엄마'나 밀착된 모자관계가 산업사회의 산물이라면 어머니같은 아버지, 성애(SEX)가 아니라 일을 통해 미래가족의 부부관계는 더 친밀해진다.
정보화사회의 진전과 미래 가족의 개인화 추세가 '밥상머리 교육'을 힘들게 할 지도 모르겠다. 대가족 혹은 핵가족이 둘레상 혹은 식탁에 둘러앉아 공식(共食)하던 풍경이 조만간 집밖이나 집에서조차 따로따로 식사하는 개식문화(個食文化)로 일부 대체됨은 자명한 일. 이미 10대 자녀들 사이에서 개식이 보편화돼있다.
효가대 여성학과 김경화교수는 "남녀 대학생들이 현실적으로 동거를 하고 있으면서도 결혼할때는 처녀막 수술이나 순결한 상대방을 찾는 풍조로 미루어 미래가족의 틀은 정보화사회의 추세를 따라가되 가족의 정서적 기능을 쉽게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럼 어떻게 되나?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고 온세상을 뒤바꾸는 컴퓨터 보다 강하단 말씀?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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