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병원촌지

입력 1999-07-20 14:09:00

얼마전 직업이 서로 다른 동창생 몇명과 저녁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당시 촌지가 사회적인 문제가 돼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었으므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갔다. 모두들 주변에 촌지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사례와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 한 친구가 "내일 모친이 서울의 모 대형병원에서 심장수술을 위해 입원하기로 돼있는데 촌지를 어느 정도로 하면 적당하겠느냐"며 나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병원에서 관례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나는 "줄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즉 대부분의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촌지가 병의 경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말해 주었다. 오히려 주치의에게 부담을 주어 예후를 나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 사이에는 귀빈 증후군(VIP Syndrome)이라는 속설이 있다. 다시 말해서 평소 잘 아는 환자나 촌지를 받은 환자의 예후가 오히려 더 나쁘게 나타난다는 일종의 징크스이다. 차라리 안면이나 촌지 등의 부담을 가지지 않는 상태에서 일상적인 마음으로 진료에 임할 경우가 그 환자의 회복이 더욱 빠르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의학도 마음을 비우고 물처럼 담담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그 결과는 기대이상이 된다. 보호자 입장에서야 보험료를 납부했다는 정도로 생각하며 스스로의 위안을 삼을지 모르겠지만 촌지의 효력은 별로 없다. 어쩌면 돈은 돈대로 허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리게 할지도 모른다.

문득 옛날 내가 받은 잊지 못할 촌지 생각이 난다. 정성껏 치료해 오던 환자가 사망하였는데 유가족들이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으면서 나에게 건네준 조그마한 선물이었다. 비록 환자는 사망하였지만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주었다는 고마움의 표시였을 것이다. 이같은 마음은 그야말로 환자·보호자·의사, 이 긴밀한 함수관계에 탄탄한 신뢰감을 부여한다. 신뢰감이 결국 환자를 건강한 평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여, 우리들 모두는 아름다운 사이가 된다.

곽병원 원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