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논술-6차문제 우수작

입력 1999-07-16 14:18:00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보기에는 그럴 듯하나 실속이 없는 것을 말한다.나치와 일제가 벌였던 자민족우월주의, 유고 내전에서 볼 수 있는 인종 차별 정책 등과 같이 정치 권력이 만들어내는 정치 캠페인들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 비이성의 탈을 쓴 '조작'의 혐의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러한 캠페인들은 그들의 속셈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표면에 온갖 좋은 말로써 아름답게 포장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좋은 빛'에 연결 지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분'은 그야말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구실만을 하는 걸까?

명분은 그 자체로써, 어떤 개혁이나 운동을 구체적으로 실행시키는 기능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운동을 추진함에, 이유나 구실을 밝힘으로써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어 적극적으로 그것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명분이 없으면 운동에 대한 지식이 적은 다수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어렵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대의 명분만을 중시하는 사대부…'로 표현된 경우나, 현대의 정치 현장에서 '명분만을 내세우는…' 식으로 표현된 '명분'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명분 자체가 사회에 나쁜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명분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운동을 추진해 나가려는 이들에 의해 악용, 남용되었을 때 이 같은 비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시해야 할 문제는 명분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정당한 명분을 세우고 그 명분에 맞는 운동을 실천해 나갈 수 있을까이다.

명분에 걸맞은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명분은 그야말로 겉을 그럴 듯하게 꾸미기 위한 구실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구실로서의 명분이 아닌, 운동의 실천을 위한 기본 골격으로서의 명분을 세우고 그에 맞추어 시행을 해야 한다. 또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명분은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얻기 힘들다. 1884년 급진 개화파 세력이 주도한 갑신정변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민중들이 가장 원했던 토지 제도의 개혁이 정변의 14개 조 정강(政綱)에 포함되지 않음이 갑신정변 실패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였다. 민중이 원하는 바가 일단 명분으로 세워지지 않으면 그 운동에 대한 관심조차 끌지 못한 채 실패하기 쉬운 것이다.

명분의 가치를 잘 모르는 자로(子路)를 꾸짖는, 공자의 '명분을 세울진대 반드시 말이 서고, 말이 설진대 반드시 시행되는 것이니'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명분은 그 시행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명분이 구호에만 그치면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요즈음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게 보일 정도로 포괄적이고 산만한, 하지만 언뜻 보기엔 매우 그럴싸한 명분을 세우고 그에 맞게 실천하지는 않는 '정치적 조작'이 팽배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현실을 고려한 운동의 목표 실현을 위한 기본 골격으로서의 명분과 그에 걸맞은 실천이 잘 조화된 운동을 벌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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