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프레지던트 킴, 최후의 날

입력 1999-07-14 14:14:00

내게 있어 가장 경이로웠던 역사적 인물, 그 최후의 사적(私的) 풍경은 어떠했을까? 음,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선 아마 5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래, 정확히 1994년 7월 9일의 대구다. 당시 외국어학원을 통해 알게된 한 외국인 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미스터 우, 프레지던트 킴이 사망했대요. 전세계가 떠들썩해요"

순간,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프레지던트 킴'이라면, 그럼 김영삼대통령이…. 난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을 전한뒤 곧바로 거실로 달려가 텔레비전을 켰다. 그런데, 어이쿠 맙소사! 그가 말한 '프레지던트 킴'은 '김영삼'이 아니라 '김일성'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엔 그의 말대로 김일성 초상화가 가득 채워져 있었고 가끔 그의 행적과 근황이 흥분에 들뜬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때려 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순간 떠오른 문구였다. 정말, 나의 머릿속에서 왜 그런 지저분한 구호가 떠올랐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 구호만큼 나를 압도했던 것은 없었을 것이다. 정말 때려 잡아야 할 것은 김일성밖에 없었으며, 무찌를 것은 공산당밖에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외의 것이 있었다면, 아마 1970년대의 부엌과 시궁창 사이를 한창 오가던 '쥐'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리라…. 그래, 그 시절 난 그를 저 시궁창이나 부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쥐, 아마 그 정도의 더럽고 기생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구호는 학년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었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선생님이 30대에서 50대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목소리가 더 격앙되었다는 것 뿐이었다. 여전히 때려 잡아야할 김일성은 호시탐탐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흡혈귀로 교육되고 있었고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그의 얼굴을 생각하며 의식화된 분노의 단어들을 휘갈겨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때려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때까지의 인생에 대해 꽤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날 오후의 모든 일정은 프레지던트 킴의 최후와 함께 막을 내렸다. 행여 그가 부활하지나 않을까 하는 엉뚱한 기우.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의 부활소식은 영영 전해지지 않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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