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문화-알프레드 히치콕

입력 1999-04-24 14:18:00

심리묘사 탁월한 스릴러의 대가상처자국도 없다. 몸에서 흐르는 피도 없고, 칼이 몸을 찌르는 장면도 없다.다만 쏟아지는 샤워, 칼날과 경악하는 여자, 욕조 바닥에 떨어지는 피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칼이 자신의 몸을 뚫고 들어오는 듯한 공포감에 전율을 느낀다.

이미 스릴러의 대명사가 된 알프레드 히치콕(1899-1980)감독. 그는 샤워 신을 염두에 두고 사이코 를 흑백으로 찍었다. 피를 컬러로 찍으면 관객이 견디기 힘들것이란 배려에서다. 실제로 영화가 개봉된 뒤 딸이 샤워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는 부모들의 편지가 쇄도했다.

히치콕은 탁월한 심리 묘사, 히치콕 셰도 (Hitchcock's Shadow)로 불리는 명암처리, 짧게 끊어 연결하는 화면등으로 관객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 작가다.

서스펜스의 신(神) 스릴러의 대가 인 히치콕의 영화를 보는 재미는 예측을 불허하는 전개에 있다. 여주인공이 삐그덕 문을 열면 관객들은 모두 문뒤에 숨은 악당의 급습을 예상한다. 그러나 튀어나오는 것은 고양이. 안도의 한숨을 쉴 찰라 날카로운 음과 함께 여주인공 뒤에 악당이 나타나는 식이다.

쉬었다 끊고, 끊었다 다시 조이는, 관객을 갖고 노는 현란한 극전개는 지뢰밭을 건너듯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는 사이코 를 찍은 후 나는 관객들을 연출했다. 내가 오르간을 연주하듯 관객을 연주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고 했다.

사이코 (1960년)는 61세로 정점에 오른 히치콕의 화려한 서스펜스 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4만 달러를 훔쳐 외진 모텔(베이츠)에 투숙한 여인이 사이코인 모텔주인(노먼)에 의해 죽고, 그는 엄마의 시체를 박제, 엄마 행세까지 하는 다중인격자로 밝혀지는 내용은 2시간짜리 공포영화의 완벽한 플롯이다. 특히 사이코 는 무서움에 몸서리치다 극장문을 나서면 잊어버리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언제든 곱씹을 수 있는 공포심의 조장이란 점에서 당시 인기를 끈 뱀파이어 와 드라큐라 와 차별화를 이룬다.

샤워실에서 여주인공이 난자당해 죽는 순간, 공포영화의 괴물은 인간화되고 공포의 대상은 마늘이나 주술로도 물리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그리고 현실속에서 무수한 노먼(앤터니 퍼킨스)과 베이츠 모텔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격돌한 혼동과 무질서의 60년대 미국사회를 예언한 영화로 칭송받는 사이코 는 이후 많은 공포영화 대가들의 성전(聖典)으로 떠받들여진다.

데드 얼라이브 바톤 핑크 13일의 금요일 스크림 등 많은 공포영화에 영감을 주었으며, 샤워신은 브라이언 드 팔머감독에 의해 여러번 재창조 되기도 했다. 올해 개봉된 구스 반 산트의 리메이크작 사이코 는 컬러만 입혔을뿐 조명, 카메라 앵글, 대사, 캐릭터, 음악 등 모든 요소를 완벽히 옮겨내 히치콕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줬다.

57년 현기증 , 59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 60년 사이코 , 63년 새 , 64년 마니 등 60년대는 히치콕의 전성시기였다.

인간의 잠재적 원죄와 비뚤어진 편집증에 대한 고찰, 자본주의사회의 불안 심리, 냉전 시대의 광기 등을 주된 테마로 잡아 작가적 역량을 펼쳤다.

자신이 만든 영화 총 53편중 40편을 서스펜스물로 만든 히치콕은 누명 쓴 남자, 부정한 여자, 정신병자 등을 즐겨 소재로 다루었으며 여자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정형화된 시각을 보였다.

다이얼 M을 돌려라 의 그레이스 켈리, 사이코 의 자넷 리, 레베카 의 조안 폰테인, 백색의 공포 의 잉그리드 버그만, 현기증 의 킴 노박, 새 의 티피 헤드렌 등 당대 할리우드의 미녀들을 대부분 출연시켰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살해당하거나 살인자들로부터 곤욕을 치르는 역할이라 백인 금발 미녀에 대한 강박관념 으로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등장인물중 흑인을 찾아볼 수 없어 인종차별이란 지적도 있었다.

또 한가지 빠트릴 수 없는 점은 1940년 영국에서 할리우드로 이주한 이후 모든 작품에 한커트 정도 직접 단역으로 출연, 관객들에게 히치콕 찾기 란 색다른 재미를 준 것이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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