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맥

입력 1998-02-12 14:20:00

소백산맥의 준령들이 칼날처럼 경계를 이루며 태백땅과 등을 맞댄 산간오지 봉화(奉化).조선시대 왕조실록을 보관하던 태백산 사고(史庫)가 이곳 춘양면에 위치했을만큼 외지인의 발길이닿지 않던 첩첩이 산중세계다. 비슷비슷한 생김새의 크고 작은 산들이 사방천지에 펼쳐진 이 땅에는 예나 지금이나 부쳐먹을 한 평 밭뙈기조차 변변찮다. 이 척박한 땅에 조상대대로 억척같이 살아온 봉화사람들. 가난하지만 심성만큼은 산을 닮아 순수하고 넉넉하다.

봉화에서 평평한 땅에 농사짓기란 여간 호사가 아니라는 말이 통할 정도다. 지천으로 널린 산이그저 밭인 셈이다. 흔하디 흔한 산자락을 걷어내고 구릉을 갈아엎어 만들어진 농토. 이처럼 거칠디 거친 자연환경과 부대끼며 견뎌온 봉화사람들은 가슴속으로 말 못할 사연들을 삭인채 살아간다. 온 식구가 매달려도 연명하기도 힘든 농사라해봐야 담배나 고추가 고작. 그나마 척박한 토양에도 잘자라주는 작물들이라 여간 고맙지 않다. 감자채종포니 고랭지약초니 도회지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번듯한 특작은 근래의 일이다.

명호면 삼동2리. 20여 가구가 오밀조밀 낮은 지붕을 맞대고 살아가는 전형적인 산간부락이다. 굴뚝위로 모락모락 오르는 매콤한 연기내음에 코끝이 찡한 시골내음,누런색 밭고랑에 왈칵 고향의그리움이 다가오는 곳이다.

"농사라해봐야 일년에 고작 고추 3, 4백근하고 담배 15포정도라예"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도회지로 떠난터라 이 정도도 이젠 힘에 부침미더". 무쇠솥에 소여물을 끓여내며 조분조분 어제 오늘 어려운 살림살이를 얘기하는 여화순씨(54). 법전에서 바로 이웃한 명호면으로 시집와 30년가까이 병치레로 속을 태운 남편에다 7남매를 어렵게 키워낸 농촌아낙네다.

"서울사는 여섯 아들들과 나눠 먹을만치 농사짓고 남는 것은 내다팔지예. 철철이 약치고 잔손질도이만저만하지 않지만 금이 맞지않으면 일년 보람도 찾기 힘들어예". 오랫동안 병수발을 들어온 남편은 몇해전 세상을 떴다. 평생 고생과 빚만 안겨준 사람… 넋두리도 이젠 부질없다. 땅거미가 짙게 깔릴무렵 툇마루밑 벌건 아궁이불빛에 어린 여씨의 얼굴빛이 붉게 물든다. IMF사태로 갈수록어려워지는 농사걱정, 서울사는 아들들 걱정에 시름이 없을 날이 없다.

해발 8백96m의 넛재를 넘어서면 봉화에서도 가장 외진 석포(石浦)면. 강원도와 경북의 경계를 이루는 이 산간땅에 왠 포구의 이름일까.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가파른 산굽이를 돌아 흘러내려물맑은 계곡과 기이한 모양의 암석을 만들어낸 탓에 석포라는 이름이 생겼을 것이라는 추정뿐. 인구 3천명 남짓한 석포는 그동안 소천면 출장소로 있다 83년 울진군의 일부 지역을 편입, 면으로승격됐다.

한때 화전민이 터를 잡고 살아왔던 산간마을의 살림살이도 이젠 예전같지 않다. 1백50여년전 조선시대부터 내려왔던 화전이나 그들의 주거지인 너와집도, 숯가마도 그저 옛 이야기일뿐 지난 시절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산골풍경도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변하지 않은건 산과 물뿐이라고 했던가.근래엔 무, 배추등을 경작하는 고랭지채소밭과 전국에 감자종자를 보급하는 감자채종포가 들어섰다. 느뱅이로 불리는 석포2리 광평에 있는 감자채종포는 면적만도 12ha. 오래전부터 화전민들이늪을 메워 농사를 지었던 이곳은 현재 일곱 농가가 씨감자 생산에 매달려 적잖은 수익을 올리고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해도 너와집이 남아 있었으나 이제는 다 없어졌지요. 부근의 숯가마도 10여개불을 땠으나 이제는 한 곳 빼고는 모두 불문닫은지 오랩니다. 채산이 맞지 않아요". 감자채종포에서 일하는 권영우씨의 얘기다. 한철 농사를 끝낸 그는 눈이 많은 겨울이면 산을 내려와 석포2리에서 농한기를 보낸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면소재지로 내려와 사는 탓에 몇해전 폐교된 석포초등학교 광평분교는 이제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학교운동장도, 인가도 모두 없어지고 백년넘은 노송만이 산중마을을 지키고 있다.

나라의 중요한 건물자재로 명성이 높았던 춘양목의 고장 봉화. 억지춘양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던 이 고장은 나무를 실어내는 산판이 한창일때는 봉화 춘양에서 돈자랑하지 말라고 할만큼 잘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끝물만 남아있을뿐 척박한 땅과 싸워야하는 억센 농사꾼들에게는그 시절이 아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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