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세상 새 아메리카

입력 1998-01-20 15:35:00

미국에서 손꼽히는 공립학교인 워싱턴 근교 랭글리고등학교 주변은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교육열이 남다른 부모들이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기 위해 몰려들어 집값이 껑충 뛰었다. 대구의 수성구나 서울의 강남처럼 미국에서도 학군에 따라 집값이 달라질 정도로 교육열이 높아가고 있다.마치 한국 중국 일본 등 교육을 으뜸으로 치는 유교권 문화가 옮겨온듯한 분위기다.요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고, 대부분 상급학교로 진학하려 한다. 대졸자와 고졸자간 임금 격차가 지난 80년 25%%에서 현재 90%% 수준으로 크게 벌어졌기 때문. 졸업후 고임금을 받을수 있는 첨단 정보기술학교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미국은 모든 업무가 컴퓨터로 이루어지고, 세계에서 가장 정보화가 앞선 나라다. 이런 환경에서는단순 사무원이라도 첨단정보화기기를 능숙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미국교육도 이같은 사회적 요구와 실용성을 바탕으로 급속도로 변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수학, 과학교육강화를 우선으로 꼽고 있다.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학 교육대학원에서 만난 티모시스탠달 교수는 "첨단 테크놀로지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수학과 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며대학 진학과 취업에서 이들 과목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갈릴레오 과학 기술 아카데미'는 이같은 추세에 맞춰 3년전에 '갈릴레오 고등학교'에서 과학 기술 전문학교로 이름을 바꾼 대표적 경우. 이 학교에서 만난 랄프 매드슨 교감은 "학자, 기업가 등으로 학교 개편 연구팀을 조직, 학생들의 대입.취업 준비에 도움이 되도록 기존에각각 2년 과정이던 과학을 4년, 수학을 3년 과정으로 늘려 교육수준을 높였다"고 말했다.이 학교의 미적분 우월반 수업에서는 수학성적이 뛰어난 25명의 3~4학년생(총 4년과정)들이 전자계산기를 꺼내 미적분문제를 풀고 있었고 교사가 환등기를 통해 계산기로 답을 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학생중 백인은 1명밖에 없고 나머지 대다수는 동양계 학생이라는 점.원래 이 학교에 동양계 학생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암기력이 뛰어난 동양계 학생들이 수학실력이 더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생들의 계산기 사용이 보편화된 미국에서는 기계가 어려운 계산을 대신하는 시대에 구구단을외울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등 교육에 암기력과 보조기계를 얼마나 도입할지 문제를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초 시애틀에 이민온 송현우군(고교 1년)은 "미국 애들은 계산기가 없으면 셈을 잘못해 돈을 잘못 거슬러줘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실생활의 적응력을 높이는 교육은 세계사와 컴퓨터 교육에서도 드러난다. 시애틀 데카터 고등학교에서 '세계학'(global study) 과목을 가르치는 키스 포리스트 교사를 만났다. 그는 "미국의 세계사교과서는 유럽중심으로 돼있어 아시아 등 국제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국제경쟁시대에 현실감있는 세계관을 심어주기 위해 교과서 대신 잡지 등 관련자료를 통해 가르치고 있다"고했다. 항구도시인 시애틀에 관한 수업에서 출발,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와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지의 정치, 경제, 문화 등에 관해 가르치는 이 과목은 중국 귀속후 홍콩의 변화 등 특정 국가의 정치 경제문제 등에 대해 조사, 리포트를 제출하는 과제도 주어진다.

정보화사회를 선도하는 나라답게 미국의 컴퓨터 교육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뉴욕에 있는 포춘지 사무실에서 만난 루이스 크라 기자는 "글을 쓸줄 아는 아이들은 컴퓨터를 만질수 있는게 현재 미국 교육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미 교육부는 오는 2000년까지 모든 학교와 도서관에 인터넷을 설치하겠다며 정보화 교육을 강화할 뜻을 밝히고 있다.

심지어 유치원에서도 인터넷을 가르치는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인터넷에 올려져있는 모범답안을찾아 베껴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를 해결하기도 해 공부를 않는데도 학점을 잘 받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교사들이 컴퓨터에 담아놓은 시험성적을 몰래 고치려다 발각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획일적, 비효율적, 비인간적인 공립학교에 대한 불만으로 미국 학부모들 사이에 대안교육에 대한인기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가을 미국의 신학기가 시작되자 미시건주와 애리조나주 등여러 지역에서 수천명의 학생들이 새로 생긴 차터스쿨(charter school)로 옮기거나 홈스쿨링(homeschooling)에 들어갔다.

전통적인 공립학교와 달리 교육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있으나 '계약'된 학습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문을 닫아야하는 혁신적인 차터스쿨은 현재 8백여개에 이를 정도로 증가 추세. 클린턴 행정부는 1억달러를 투입, 2000년에 이 학교를 3천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가르쳐 교육과정을 공인받는 홈스쿨링도 지난 2년간 2백%% 이상 증가,현재 1백만명의 학생들이 가정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 교육부에서 만난 주디스 존슨 부차관보는 "종교적 이유 등으로 가정교육을 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아이들이 공부는 잘하더라도 사회적 적응력이 어떨지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늘어나는 대안학교와 교육열의 증가는 현재 미국 공교육의 수준이 뒤떨어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21세기를 앞두고 실용성있는 교육에 국가 운명을 거는 미국의모습은 미래에도 세계 초강대국으로 우뚝 설 '교육 선진국'의 자화상을 그려보게 한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학벌위주의 입시문화에 젖어있는 우리들은 다음 세기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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