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고향-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5)

입력 1998-01-17 14:27:00

아이오와는 드넓은 땅이다. 끝없이 펼쳐있는 옥수수밭이 아득한 지평선을 이루는곳.

"아이오와는 풍요롭고 흙냄새가 나며, 또 살아있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첫부분에서 주인공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프란체스카 존슨(메릴 스트립 분)과 함께 트럭을 타고 다리를 찾아가면서이렇게 말했다.

사진작가인 로버트와 중년의 평범한 시골주부 프란체스카의 나흘간의 짧은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불륜을 넘은 아름다운 사랑이 보는이의심금을 울리는 영화다.

남편존슨과 두 아이들이 일리노이박람회에 가고 없을때 로버트는 잡지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프란체스카의 집에 우연히 들르게 된다. 두사람은 그녀의 남편이 돌아올때까지 나흘간 인생을 뒤흔들만큼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다시 일상의 가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고희로 생을 마감했을때 중년에 이른 그녀의아들과 딸은 어머니의 유품속에서 일기장을 발견한다. 25년전 가을의 문턱에서 한순간의 폭풍처럼 체험했던 어머니와 외간 남자의 열정적 사랑.

자식들의 반응은 경악과 분개에서 점차 연민과 긍정으로 바뀌고 결국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이른다. 마침 가정불화를 겪고 있던 이들은 배우자와 화해하고 어머니의유언에 따라 유골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밑에 뿌린다.

대지의 풍요로움이 물씬한 곳. 미국 아이오와주 매디슨 카운티의 윈터셋은 이 영화의 무대다. 매디슨 카운티는 아이오와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디모인에 이웃해있다.윈터셋은 이 카운티의 중심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한두군데가 아니다. 매디슨 카운티에는 영화속의 다리처럼 덮개가 있는 나무다리가 모두 19개나 있었다. 지어진지 1백년이 넘은 다리도 지금까지 6개나 남아있다.

그중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진짜 무대는 로즈맨 브리지다. 윈터셋에서 92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보면 자줏빛 덮개를 한 로즈맨 브리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영화속의 로버트가 감탄했듯 로즈맨 브리지는 대단히 아름다웠다. 다리안쪽 벽면에는 수없는 낙서가 새겨져있다. 한결같이 사랑의 메시지들. 프란체스카가 다리 사진을 찍고 있는 로버트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보인 R과 W자가 커다랗게 새겨진 낙서도 그대로다. 프란체스카는 이 낙서가 새겨진 곳 바로 옆 바깥벽에 로버트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쪽지를 붙여 놓았었다.

다리는 영화에서처럼 덮개 나무판자가 떨어져나가고 칠이 벗겨진 허름한 모습이 아니다. 지난 92년 개수공사가 이뤄져 깔끔하고 완벽한 상태. 그런데 영화가 촬영된것은 95년이었으니 이때는 개수공사가 이뤄진 뒤다.

제작진은 원작인 로버트 제임스 윌러스의 소설대로 다리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특수효과팀을 동원했다. 다리 덮개의 나무판자들을 하나씩 뜯어내 따로 보관한뒤 별도로 제작한 판자들을 얹었다. 그위에 자주빛 안료에 끈적끈적한 시럽과 녹말가루,우유가루를 섞어 고루 바른뒤 붓으로 문지르고 에어 컴프레셔로 불어내서 1백년 묵은 낡은 다리모습을 되살렸다.

영화가 공개된뒤 불과 2년만에 로즈맨 브리지는 관광명소가 됐다. 다리옆에 오두막을 갖고 있던 와이먼 윌슨씨는 오두막을 기념품 가게로 바꾸고 로즈맨 브리지의 여러가지 이미지를 담은 기념품을 팔고 있다.

윈터셋에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90%% 이상이촬영된 프란체스카의 집이 영화속의 모습 그대로 보존돼있다. 프란체스카의 집은영화에서처럼 다리에서 불과 몇마일 떨어진 것이 아니다. 무려 20마일쯤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이곳 역시 영화덕분에 관광명소로 변해있다.

더욱이 이 집 앞마당에는 영화속에서 로버트가 타고 다녔던 구식 GMC트럭이 그대로 전시돼있어 실감을 더한다. 입장료 5달러. 자신의 이름을 '메리'라고 소개한 가이드는 1870년 아르헨티나의 한 해군장교가 이 집을 처음 지었다고 설명을 시작한다. 지금은 인근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미드가(家)의 소유라는 것.

오랫동안 버려졌던 이 집은 벽난로 주변 대리석이 모두 뜯겨져 나가고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의 난간도 없어진채 거의 폐허가 돼있었다. 다시 특수효과팀이 동원됐다.그들은 난간을 새로 붙이고 벽지를 바르는 등 또 한차례 개수공사를 했다.

그러나 공사는 이 집을 새집으로 꾸미는 대신 영화의 분위기에 알맞도록 적당히 낡아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 이 과정에서 부서진 난간 일부와 똑같은 상태의 색깔을재현시키기 위해 컴퓨터 기술이 이용되기도 했다.

집안에는 영화의 주무대가 됐던 프란체스카의 주방이 영화속 그대로 남아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첫 입맞춤을나눴던 곳. 그와함께 촛불을 밝힌채 저녁식사를 같이 했던 테이블도 그대로다.위층에는 로버트가 윗옷을 벗고 땀을 씻는 모습을 훔쳐보고나서 "이건 웃기는 일이야"하며 혼자 쑥스러워했던 프란체스카의 침실, 그리고 그 창문 뒤켠에는 로버트와프란체스카가 사랑을 나눴던 욕실에 욕조까지 남아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욕조안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가장 좋아한단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아름다운 것은 로버트와 프란체스카 두사람이 나흘동안의 사랑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두사람이 마지막 눈인사를나눴던 곳. 그곳은 윈터셋의 그린가(街)와 존웨인로(路)가 만나는 교차로다. 지금도영화에서처럼 텍사코 주유소가 있다. 그러나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때는 영화속 이별의 장면처럼 거센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윈터셋(미 아이오와주)·孔薰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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