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국난을 이기자

입력 1997-12-12 15:39:00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가방을 멘 학생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셋에 하나 꼴은'EASTPACK'이라는 외국상표의 가방이다. 젊은이들의 외제 선호 경향을 볼 수 있는 단적인 예이겠는데,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이 가방을 사기 위해 학생들이 외국상품 판매점에 몰려 법석을 떨던모습을 본 일이 있어 씁쓸하다. 외국 물건 좋아하기는 더 어린 축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역시 텔레비전에서 본 터이지만, 어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는 국산보다 일제, 미제 등 외국 학용품을 더많이 진열해 놓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외제가 국산에 비해 질이 더 좋아서 또는 디자인이 멋있어서 라고 당당히 말하는 아이도 있지만, 주인은 아이들이 외제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니까 팔지않을수 없다고 변명한다. 몇해전 학생들이 쌀개방 반대 시위를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한데 시위가끝나자 우우 몰려 들어가는 곳은 패스트 푸든가 하는 외국 체인의 편의점이었다. 물론 젊은이나어린이들의 이런 외제 선호는 다 어른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세계에서 양주를 제일 많이 소비하는나라, 5백만원이 넘는 수입 모피 코트가 불티나게 팔리는 나라, 천만원이 넘는 외제 손목시계도예사로 차고 다니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이 외제 선호로 갈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또 국민적 외제 선호는 당연히 외채로 이어지는 것, 따지고 보면 오늘의 경제대란은예견되어 있었다해도 좋을 것이다.

또 그동안 우리는 이웃나라, 먼 나라를 돌아다니며 얼마나 돈많은 체를 하고 잘난 체를 했는가.가령 중국이나 베트남의 호텔에 가면 로비에 반바지 차림으로 퍼지르고 앉아 큰 소리로 떠드는한국의 관광객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웬만한 현지주민이면 이들이 돈 몇푼있다고 자기들을 깔보고 오만방자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약재상에 가서는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약을 싹쓸이하고, 술집에 가서는 돈을 마구 뿌려 종업원들의 얼을 빼고, 관청을 드나들며 턱없이 큰 뇌물로 관리들을 매수하고...이런 행태에 대해서는 우리들 스스로 벼락부자가 되었지만 그에걸맞은 교양을 가지지 못한 졸부 행세라고 비판했지만 마침내 외국사람들로부터는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얻게까지 되었다. 이런 행태는 프랑스, 영국 등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로까지 이어져,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돈을 물쓰듯하고 시끄럽게 굴어 희한한 인종으로 간주되면서 국제 봉이 되었다. 이런 우리를 보면서 외국사람 가운데는 아마 언젠가는 혼이 날 사람들,혼을 내줘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전 콸라룸푸르에서의 '아세안 플러스 6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우리 관리가 중국의 인민은행 부총재에게 외환 보유액 1천4백달러나 되는 중국이 IMF 자금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요청하자, 국민소득 6백달러인중국이 만달러를 넘는 한국에 돈을 꾸어 준다면 중국 인민들이 납득하지 못하지 않겠느냐며 거절했다는 얘기가 바로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

왜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가,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일이다. 봇물이 터지는 것도 모르고 세계화다,신경제다 하면서 큰 소리만 떵떵 치다가 막을 기회를 놓치고 만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부패한 현정권 담당자들을 불러 내어 돌로 치고싶을 만큼 밉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 위에 쌓이고얹힌 거품을 걷어냄으로써 스스로 더욱 단단하고 튼튼해지라고, 하늘이 우리에게 준 기회일는지도모른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설친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먹고 쓰고 한 것이 다 빚인 것을 모르고금방 선진국이 다 된 것처럼 으스대었다. 우리보다 좀 못한 나라에 대해서는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을 잊고 깔보고 괄시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너무 마구 먹고 쓰고 버렸다. 이번이 이 잘못된 버릇을 고칠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어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더 튼튼하고 문화적으로 더 믿음직한 나라로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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