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건강교실-노이로제

입력 1997-11-11 14:15:00

무대위 오케스트라. 악단 합창단 성악가 청중이 모두 한국사람이고 지휘자만 초청받은 외국인이다. 연주가 끝난뒤 터져나온 찬사는 '브라보''앙코르'였다.

음악이 심금을 울렸다면 한국사람들은 당연히 '좋다''한번 더'라는 찬사가 나와야 하는데 왜 어색한 외국어를 외치는가. 행여 외국어로 찬사를 표현해야 문화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다름아닌 문화식민주의에 중독된 자기비하의 노이로제 증상이다.

일명 신경증인 노이로제는 누구나 겪고 어디나 있는 것이다. 즉, 정상에서 벗어난 일부만 환자인것이 아니라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노이로제를 갖고 있다.

노이로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는 것이다. 핵가족 시대,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괴롭히고 있다. 부모들의 강요에 아이들은 방과후 뿔뿔이 흩어져 학원으로 가야 한다. 집에 오면 숙제, 과제로 녹초가 돼도 아랑곳하지 않고 '왜 딴 소리냐'며 몰아댄다.

놀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은 한숨과 억울함 속에 호시탐탐 딴전을 피운다. 부모 아이간 악순환이거듭되고 급기야 원한마저 쌓인다.

이러한 관계에서 인격,정서,사회성 발달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린다. 자유로운 심성발달은 부모의보상심리 열등감해소 애살에 의해 무시되어 버린다.

이것이 대다수 부모들이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다고 간주되는 노이로제 증상들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책상위 사무용품을 만졌다하면 꼭 제자리에 반듯이 놓아야 하는데, 다섯번 고쳐놓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있다.

혹시 비뚤게 놓였거나 네번 놓지 않았나 싶으면 다시 다섯번을 고쳐 놓아야 한다.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안 그러면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이 사고나 강도를 당할것 같은 마음이 들어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엉뚱한 생각인줄 알면서도 그만둘 수 없었고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신경도 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연을 알고 보니 그에겐 헌신적인 어머니가 공부외 다른 것을 모두 대신 처리해 주었는데, 그것이 답답해 벗어나고 싶어도 어머니가 놓아 주지 않았다는 것.

그는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답답함을 억누르고 살았다. 그렇게 쌓인적개심.분노가 어머니가 죽었으면하는 마음으로 발전될때마다 죄책감이 되고 그것이 물건을 네번놓으면 발음상 죽음(死)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다섯번을 고쳐놓아야 했던 것이다.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 마음의 덫에 걸려 고통을 받고 이것이 노이로제가 된 것이다.공황장애, 신경성에 따른 신체증상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노이로제의 바탕에는 이와 유사한 심리작용이 깔려있다.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특히 고통이 있을 때는 그 고통에 나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는 내 마음을 돌이켜 보아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태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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