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금융 100년(33)-경일종금(1)

입력 1997-09-09 14:43:00

지난 82년 장영자 사건이라는 거액의 어음사기사건으로 자금시장이 극도로 혼란되자 정부는 '7.3조치'와 함께 이듬해 사금융 양성화 차원에서 지방에 3개 투금사 설립을 허가한다. 대구지역 3개종금사 중 하나인 경일종합금융(주)도 이때 탄생했다. 당시 대구지역 경제계는 만성적 자금초과수요로 기업 운영자금 조달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일종금은 당시 대구지역 최대 건설업체인 광명그룹 이수왕회장이 주축이 돼 △발기인총회(83년2월22일) △설립등기(5월2일)를 거쳐 대구시 중구 덕산동 126번지 현 흥국생명 빌딩에 사옥을 마련하고 이해 7월7일 광명투자금융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개시한다. 납입자본금은 1백억원. 초대사장에는 전 광명금고 사장 김희창씨가 선임됐다.

광명투금은 출범 첫날 수신고 5백억원을 기록하는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넉달만인 83년 11월 광명그룹 도산이라는 커다란 시련을 맞았다. 모기업인 광명건설이 법정관리에 놓이게 되자 광명그룹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이수왕씨 소유의 광명투금의 주식 1백%%를 인수, 직접 운영에나선다.

제일은행은 83년11월25일 광명투금의 상호를 경일투자금융으로 바꾸고 당시 제일은행 박창록 대구지점장을 제2대 사장으로 선임했다. 제일은행의 전폭적 지원 아래 경일투금은 △서울사무소 설치 △증권업 겸업허가 취득 △기업어음 중개업무 개시 등 영업력 확대를 통해 인수당시 82억원에불과하던 수신고를 87년6월 1천13억원으로 늘린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성장과 달리 경일투금은 광명그룹 도산 당시 엄청난 규모의 부실채권에 따른적자 누적으로 자본잠식이 계속되는등 수지면에서 경영정상화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제일은행은이를 은행 관리의 한계로 보고 매각을 결정한뒤 인수 희망자 물색에 나선다.

이에 당시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인 김홍식 금복주 회장을 비롯한 지역 상공인 10여명이 경일투금을 타지역 기업인에게 내줄수 없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87년12월31일 전격 인수했다. 김홍식씨가회장을 맡게 되고 제일은행에서 파견된 직원 중 박창록사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철수한다.김회장 등 지역상공인들은 부실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두차례의 증자를 실시,자본금을 인수당시의 약 두배인 1백95억원으로 늘리고 포항사무소를 설치한다. 91년 8월에는 박창록사장이 부회장에 취임했고 홍진호전무가 제3대사장에 선임됐다.

지역상공인 인수 당시 1천억원에 불과하던 경일투금은 인수 2년6개월만인 90년6월 2천억원을 돌파한데 이어 이듬해인 91년6월 결산시 3천억원을 돌파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화단계에 접어든다.

〈金海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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