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주초위왕인가

입력 1997-07-07 00:00:00

신한국당 경선후보들 사이에 세칭 '괴문서'유포를 둘러싼 흑색선전 시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정치판, 특히 선거를 전후한 시기에 정치권에 괴문서가 범람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 가 아니다. 더구나 선거뿐만 아니라 비정치적인 사안에까지 수시로 조작된 괴문서가 일상적 정보 처럼 공공연히 떠돌고, 일부는 진실로 믿어짐으로써 우리사회가 음험한 것을 즐기는 건강하지 못 한 사회가 돼 가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까지 해왔다. 괴문서의 특성은 일단 주체와 정보의 소스가 분명치 않다. 또한 추정된 현상과 유추된 사실을 부정적이며 그늘진 쪽으로만 바라보는 특성을 지닌다.

이번 '이수성가계(家系)특성'이란 문제의 유인물도 역시 정보의 주체가 없다. 유추되거나 추정된 사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부분이 대부분이다. 형식적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말 그대로 '괴문 서'다. 따라서 논란의 초점은 괴문서 그 자체의 시비를 넘어 이수성후보의 선친이 과연 친일분자 냐 아니냐는데 모아진다.

지금 국민들로서는 괴문서의 상세한 비방내용도 잘 모를뿐 아니라 이수성후보진영이 준비해 있는 선친의 반일(反日)정신에 관한 정반대의 자료문서 또한 접하지 못한 입장인 만큼 친일시비를 '시 비'라 하기 어렵고 심판할 도리는 더더구나 없다.

선전에 있어서 수용자(국민)가 기본적으로 지니는 생각이나 인식과 '지나치게 차이나는'메시지를 선전할 경우 그 메시지를 불신하거나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이론이 있다. 오히려 부메랑이 되날 아가듯 선전한 쪽을 불신, 평가절하하는 반대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이른바 '부메랑효과론'이다. 이 여론효과론을 염두에 두고 이번 괴문서와 반대쪽의 홍보선전문서를 함께 살펴보자. 괴문서에서의 이후보 선친 친일행각 논거는 이광수, 최남선등과 함께 학도병 지원독려 조직에 참 여하고 일본에 파견, 재일 유학생들을 독려했다는 예를 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강연내용에는 이광수, 최남선 두사람 것만 기재됐을뿐 이후보 선친의 강연내용은 없 다. 반대로 이후보 진영의 자료문서에는 당시 강연은 고사하고 '가라고 해서 왔지만 할말은 없다' 고 한말을 놓고 후배들이 며칠간 쾌재를 부르고 술을 마셨다고 돼있다. 물론 괴문서가 나오기 석 달전에 당시 후배였던 어느 정치인이 쓴 회고 기고문에서 인용된 내용이다. 또한 동경제대를 나 와 대법원장 서리를 지낸 ㄱ씨와 역시 같은 동경제대를 나와 대학총장을 지낸 ㅇ씨의 회고록에는 이후보 선친이 일본 기숙사에서도 한복을 입고 한국이불을 덮고 자며 창씨개명과 일본어 상용(常 用)을 거부하고 총독부 판사시절에는 법원에 한복을 입고 나가기도 했다고 쓰고 있다. ㄱ씨와 ㅇ 씨가 이후보 선친이 친일분자가 아니라는 점을 간접 설명한 반론들은 이후보가 국무총리도 되기 훨씬전에 쓰여진 개인 회고록인 만큼 경선에 맞춰 정치적 공격전을 지원해주기 위해 쓴 자료로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어쨌든 이번 괴문서 사태에서 상반된 두가지 문서를 놓고 부메랑 효과가 어느쪽으로 날아 갈지는 양측의 메시지가 수용자인 국민들에게 어떤 인식을 갖게하느냐에 달렸지만 보다 큰 문제는 동네 선거도 아닌 대통령 후보 경선에 음해성 흑색 선전 시비가 나오고 있는 한국 정치의 바뀔줄 모르 는 '체질'이다. 국민들로서는 당장 어느쪽 문서가 옳고 그른 것을 가려주고 편들 이유도 없다. 지금은 단지 조선조 나뭇잎에 꿀물로 주(走)와 초(肖)자를 써두고 벌레가 파먹은 뒤 조(趙)씨가 왕이 된다는 역모의 음해와 흑색선전으로 조광조를 제거했던 주초위왕식의 '어둠의 정치'를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되풀이 하며 역사를 거꾸로 배우려드는 정치판을 개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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