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근 칼럼-개나리 뱁새처럼

입력 1997-03-04 15:23:00

"한양대교수·국문학"

정치를 꽃으로 치면 개나리꽃 같았으면 싶다. 정치를 새로 친다면 뱁새 같았으면 싶다. 장미꽃 같은 정치는 겉 보기는 멋지겠지만 가시가 숨겨져 있어 무섭고 묘한 향기로 수작을 부릴 것 같아두렵다. 그리고 뻐꾸기 같은 정치는 엉큼하고 사납다. 뻐꾹뻐꾹 소리 하나는 잘하지만 뱁새의 둥지에 알을 맡기고 바람만 피우는 뻐꾸기 같은 정치는 말만 있고 실천이 없어 백성을 울릴 뿐이다.

*겸허하고 성실한 모습

개나리 꽃을 보라. 개나리 꽃잎 하나만 보면 그것은 작고 연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개나리 꽃은 홀로 피지 않는다. 무리져 떨기를 이루고 오순도순 샛노란 빛깔로 마지막 겨울의 찬 바람을녹인다. 그리고 개나리는 살진 땅을 바라지 않는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개나리는 마다 않고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무성하게 한다. 어디 그 뿐인가. 뿌리가 없으면 몸뚱이에서 새 뿌리를 내려새로운 삶을 검소하게 어울린다. 우리 정치가 개나리 꽃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뱁새를 보라. 둥지를 짓는데 야무지기 짝이 없다. 음흉한 꽃뱀도 뱁새 둥지 속을 넘보지 못한다.목숨을 걸고 둥지를 지켜 새끼를 한점 부끄럼없이 키우고 길러낸다. 암컷이 먹이를 물고 와 새끼를 먹이면 수컷은 다시 먹이 사냥을 떠난다. 눈치도 변명도 꾀도 피지 않고 성실하고 정직하게뱁새는 제 할 일을 열심히 한다. 깃털 하나 자랑할 것 없고 몸집도 보잘 것 없지만 뱁새는 겸허하다. 우리 정치가 뱁새 같다면 얼마나 대견할까.

*서로 잘난체하는 정치판

오죽하면 우리 정치를 두고 개나리 꽃 같았으면 하고 뱁새 같았으면 하고 바라겠는가. 역한 냄새를 피우며 억센 가시를 줄줄이 달고 과시만 하려는 장미같은 정치 행각이 그치질 않아 개나리 꽃같은 정치를 빌고 싶다.

독수리나 솔개 같은 정치는 온 몸을 오싹하게 한다는 것을 오랫동안 경험해 왔다. 나 아니면 안된다고 제 자랑 일삼는 치자(治者)들을 보면 정치판에 나온 뻐꾸기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자기 자랑을 늘어 놓는 모습이란 남 보기에도 민망스럽다. 그래서 부끄러워 할줄 모르는 정치 현실이 난장 같아 뱁새 같은 정치를 빌고 싶다.

정치를 소인(小人)에게 맡기면 난세(亂世)가 되고 대인(大人)이 맡아야 치세(治世)가 된다고 이미성현들이 밝혔다. 광복 이후 한번도 정치란 것이 국민을 후련하게 한적이 없다는 것은 정치가 대인의 금도(襟度)를 버린 탓이다.

*대인의 도량 아쉬워

대인은 어울리되 패거리를 짓지않고 소인은 패거리만 짓고 화합할줄 모른다고 공자께서 말했다.의(義)를 탐하면 대인이고 이(利)를 탐하면 소인이란 말이다. 나를 취하면 더럽고 나를 버리면 깨끗하다는 조주선사(趙州禪師)의 말도 있다. 백성을 잘 살게 하는 정치를 하자면 무엇보다 사욕없는 청빈한 대인이어야 한다. 이는 영원히 정치적 진실이다.

대인은 검소하고 겸허하다. 대인은 물이 아래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 이치를 안다. 찬 겨울바람을녹이는 샛노란 개나리꽃을 보면 대인 마음같고, 열심히 먹이를 날라 새끼를 키우는 뱁새를 보면그 또한 대인의 가슴 같다. 우리는 누구나 겸허하고 검소한 정치를 고대하고 있다. 개나리꽃같은밝은 정치, 뱁새같은 검소한 대인의 정치를 바라고, 오만하고 당돌한 정치를 미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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