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정석수 '삶의 정경'

입력 1996-12-16 14:01:00

정석수(鄭石水.32)씨.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해본 이들이라면 한번쯤 그의 그림을 사진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십상이다.

그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노모의 기도하는 모습이 화면 가득히 부각된 작품 '어머니'를 필두로 얼핏 사진을 연상시킬 정도로 치밀히 묘사된 그의 그림들에선 단순한 대상의 재현을 넘어생(生)의 편린들이 조각조각 묻어난다.

"구상.비구상계열 구분에 구애받지않는, 제 나름의 화풍을 이루고 싶은 것이 궁극적인 작업목표라할 수 있습니다. 극사실적 경향의 작업을 당분간 택하게 된 건 좋은 그림은 충실한 사실 작업에기초를 둬야 한다는 생각에서죠"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과 사물에 대한 사랑을 화폭에 옮기려 몰두하는 정씨는 자신의 이름 석자보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모델로 서민의 일상적 모습을 통해 세대간 갈등을 묘사한 '남부정류장'의 작가로 더 알려져있는, 그러나 조금치도 스스로를 드러낼줄 모른채 작업에만 전념하고있는 노력파다.

지난 90년 계명대 서양화과 졸업이후 그가 완성한 작품이라곤 94년 제1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작 '남부정류장'을 포함한 10여점뿐. 그래서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6개월이나 일년씩아낌없이 투자하는 그의 개인전을 열려다 기다림에 지친 화랑도 적잖다는 후문."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타인들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팔리건 안 팔리건간에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삶의 향기를 작품속에 담고 싶다는 욕심에 작업기간이 자꾸만 길어지는가 봅니다"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일정한 테마에 매달려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을 터이지만 차라리 그의 테마는 하나의 보통명사로는 설명되어지기 힘든 그만의 성실성과 순수함으로 귀착된다.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초등학교 시절의 꿈을 어쨌든 반(?)은 이룬 셈인 정씨가 어느덧 단 한 점만이라도 명화(名畵)를 남기고 싶어하는 대화가를 꿈꾸느라 수시로 사색에 잠기곤 하는 것일까."그냥 무엇인가 그리고 쓴다는 것, 만들어낸다는 것이 제겐 딱 맞는 일인듯 싶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간 틈틈이 써둔 50여편의 시를 모아 시집도 한권 내보고 싶고. 첫 개인전은 2년후쯤에나 생각해보죠"

저무는 한해.

올핸 어떤 결실을 거뒀을까. 단칸방 딸린 5평짜리 작업실에서 독백처럼 내뱉는 그의 말 한 마디가 내년으로 이어질 창작에의 집념을 감지할 수 있게끔 한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죠"

〈金辰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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