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曜칼럼 世風-徐相浩

입력 1996-11-21 15:22:00

"맘대로의 세상"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악당이었던 프로크루스테스는엘레우시스와 아테네의 중간지점에 살면서 길가는 사람을 잡아다 키큰 사람이면 짧은 침대에, 키작은 사람이면 긴침대에 뉘어 크면 자르고 짧으면 늘여서 죽였다. 이러한 맘대로의 기준때문에후세에는 절대적 기준이 없는 논리등을 지적할 때 곧잘 인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신화시대에나 나타났던 이 프로크루스테스침대의 악령이 우리나라에 나타나 배회하고 있다는데 있다.

똑같이 안경사협회로부터 돈을 받았는데 장관부인은 구속되고 국회의원은 괜찮다. 똑같은 침대(法)를 적용시키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검찰발표대로라면 장관부인이었던 박성애씨는 그럴수 없이 순진무구한 가정주부가 된다. 왜냐하면 남편은 부인이 돈받은 사실을 끝까지 몰랐다. 이는 바로 부인 박씨가 남편에게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박씨는 제3자뇌물취득혐의로 구속됐다.

그런데 같이 돈받은 여러 국회의원들은 후원회기금이므로 전혀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이중 대통령의 측근중의 측근인 홍인길의원은 한사람으로부터 3천만원을 받아 정치자금법위반이라는 주장이 있는데도 묵살하고 있다. (정치자금법상 1인당 한도는 1천만원)

하기야 지난 65년 제정된 정치자금법은 이 법으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아직 없다는 사실을 봐서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 법에는 역(逆)프로크루스테스 침대 논리가 작용하고 있는모양이다.

기준이 없는 나라

얼마전 서울대학신문에 실린 어느 학부모의 글이 모든 국민에 충격을 주었다. 공부도 하지않는자기의 딸애가 장학금을 타고 있었고 이러한 방종의 결과는 교수와 합작이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놀라움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최근 매스컴에 연속으로 보도된 사실이지만 구속된 학생의 학점이 버젓이 나오고 있는가 하면 공부도 잘 못하지만 운동권학생은 장학금을 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이면 대학교육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경제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며칠전에 전국은행연합회장선거가 있었다. 당시 회장도나서는등 치열한 3파전이었다. 특히 금융자율화 선언이후라서인지 외부압력도 없어 더욱 재미있는 결과가 기대된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뒤늦게 재무관료 출신의 전 내무부장관인 이동호씨(현 신한국당 충북 보은 옥천 영동위원장)가 뛰어들더니 결국 당선되었다.문제는 없다던 외부압력이 되살아나고 이동호후보에 대한 지지내용도 내년이후 정부와의 긴밀한정책협조의 필요성이라는 다분히 정치적 색채가 있는 이유를 내걸었다는데 있다. 금융자율화를외칠때는 언제이고 간섭이나 영향력을 행사할때는 언제인가. 금융자율화는 무엇때문에 외쳤는지묻지않을 수 없다.

어느 야당의원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검찰이 직무와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수사를 벌이면서 수사대상의 82%%를 야당소속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필요에 따라 함부로 잣대를 바꿔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법대로의 세상 이 아니고맘대로의 세상 인 셈이다. 정권이든 조직이든 안정을 찾지못하면 능력보다는 충성, 정도(正道)보다는 편의위주로 흐르게 마련이라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형편은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부메랑 효과

앞서 이야기한 신화의 끝이 의미심장하고 교훈적이다. 기준없는 침대로 행패를 부리던 프로크루스테스도 결국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평소 자기의하던식대로 침대에 뉘여져 머리만 잘려 죽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부메랑효과 그대로인 것이다.힘있는자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가진자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힘있는자에 대한 잣대가 다르고가진자에 대한 잣대가 다르다면 우선은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곧 다음에 오는 힘있는자와가진자에 의해 똑같은 방법으로 당할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있다.이러한 악순환을 개선하기위해 개혁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현실의 벽을 깨지못한다면 개혁을 하고있다고 말할수 없다.

가장 민주를 많이 외치는 사람이 비민주적이고 가장 개혁을 많이 외치는 사람이 가장 개혁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또다시 되풀이 되고 마는가.

〈본사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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