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한 그릇도 겸허한 마음으로 먹자

입력 1996-07-12 00:00:00

요리(料理)하면 역시 중국이다.

모신문 중국특파원을 지낸 후배의 표현대로 하자면 중국, 특히 광동(廣東)사람 이 네발 달린 것중 요리 못해먹는 건 책상밖에 없다고 할 정도다.

벌레든 짐승이든 어떤 영장, 미물도 다 요리 해먹는 재주가 있다는 얘기다. 시력에 좋다는 모기 눈알요리만 해도 한 접시를 만들려면 수백마리의 모기를 잡아야 되는데 중국요리사들은 간단하게 만들어 낸다.

한마리씩 잡아다 일일이 눈을 떼 내려면 언제 한 접시를 다 만들겠느냐 싶지만 모기몸엔 손가락 하나 안 건드리고 단 한번에 수백개의 모기 눈알만 골라 모아 요리해 낸다는 거다.

한여름 늪지대에 큰 상자를 놓아 그 안에 유문등(誘蚊燈)을 켜둔 뒤 수백마리 의 모기떼가 모여 들면 입구를 닫아 불을 끄고 굶긴 박쥐들을 집어 넣는다. 배 고픈 박쥐들은 상자속의 모기들을 순식간에 삼켜버린다.

한참 뒤 수백마리의 모기를 잡아 먹은 박쥐를 꺼내 배를 가른다.

박쥐의 위장은 모기의 날개까지도 소화시키면서 모기의 눈알만은 소화를 못시 킨다고 한다. 그래서 눈알만 소복하게 남아 있는 박쥐의 위장을 꺼내 갖은 양 념을 넣고 요리한다는 것이다.

그런 중국인들이 개고기 요리를 우리처럼 간단히 사철영양탕으로만 끓여 먹을 리가 없다.

보신탕의 원조도 삼복(三伏)제사를 지내는데 성(城)안 사대문에 개를 잡아 충 재(蟲災)를 막았다 는 사기(史記)의 기록을 보면 중국쪽이다.

원조답게 그들의 개고기 요리는 부위와 요리 방법에 따라 몬도가네만큼이나 진 기하고 다양하다.

코는 삶아서 먹고(鼻子), 혀는 훈제해서 먹고(口條), 간은 바나나와 섞어 튀겨 먹고 (炸蒸肝), 염통은 기름에 재서 먹고(油心), 곱창은 돼지기름에다 볶아서 먹 고(梅花 出湯)…

보신탕 애기를 꺼낸 건 오늘(12일)이 마침 초복이어서다.

영양탕 철이 시작되는 올 여름에는 유난히 스테미너 보신음식에 대한 착잡한 자괴심이 불거지고 있다.

일부이겠지만 정력에 좋다면 송충이도 먹을거라는 한국인들.

여행자유화이후 지난 몇년간 동남아로, 아프리카로, 세계를 누비며 스테미너 음 식을 찾아 다닌 일부 어글리코리언들의 이미지가 어느새 세계각국으로부터 한 국인은 몬도가네 국민 쯤으로 인식돼 가고있다.

그러한 맹랑한 현실은 최근 아프리카, 캐나다, 호주등으로부터 소위 정력음식을 수입해 가라는 수출로비가 시작됐다는 보도에서 나타나고 있다.

캐나다는 물개, 미국은 악어, 호주는 캥거루,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타조고기, 거 기다 중국은 늑대와 이리고기까지 수출하겠다고 로비에 나섰다는 거다. 미국과 호주는 이미 서울시내 한복판 호텔에서 악어고기.캥거루고기 시식회를 가졌고 남아프리카공화국도 타조고기 시사회를 가졌다니까 대구의 먹거리골목 에서 늑대나 이리고기 시식회가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국민소득은 말로는 1만불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실질적인 개별소득은 6천불 수준으로 본다. 거기다 현재 정부가 지고있는 대외채무, 나라빚은 무려 35조원, 평균 한집마다 3백만원 이상의 외채를 지고있다.

집집마다 3백만원이 넘는 빚을 지고 앉아서, 그것도 북녘동포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는 판에 외제 정력식품까지 달러주고 사먹겠다는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있 는거다.

스테미너가 왕성한 국민의 건강은 바로 국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정신적 건강, 건강한 사고와 건전한 양식이 함께 갖춰지지 않은 육체적 정력만 차고 넘치는 속물적인 스테미너는 소녀가장 성폭력같은 썩은 정신만 낳 게된다.

모두들 너무 위험한 속도로 속돼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린 아직 여물어진 부자가 아니다. 올 삼복에는 좀 더 겸허해보자.

보신탕 한그릇에도 하늘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타조고기, 악 어고기 수입해다 사먹는 교만심이 생길리 없다.

먹는걸 놓고 경망스레 구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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