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문 칼럼

입력 1996-03-26 14:41:00

"청첩장.... 告知書..."

日常속 특별한 행사누구한테나 결혼식과 장례식만큼 의미있는 행사는 있을 수 없다. 결혼과 죽음은 일상성을 떠난 가장 특별한 경험이며, 따라서 결혼식과 장례식은 속된 또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성스러운 특별한 행사이다. 결혼은 무엇보다도 삶의 긍정,재생의 확인 그리고 행복을 뜻하는 행위이며 죽음은 무엇보다도 엄숙한 종교적의미를 띤 사건이기 때문이다.

결혼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받고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에 참석한다. 친구 자녀의결혼이라면 마땅히 축하하고 싶고, 친구 부모의 죽음이라면 슬퍼지는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내가 꼭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가? 과연 친구는 나의 참석과 나의 축하나 조의를 진정으로 바랐던 것인가? 이러한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결혼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받는 이들의 마음을 스쳐간다. 적지 않은 이들이 평소에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던 이들로부터 결혼청첩장과 부고장을 너무자주 받는다고 불평하는 사이에 결혼초청장이나 부고장이 어느덧 告知書 로불리게 됐다. 서로 다같이 바삐 사는 우리는 이러한 고지서를 받고 두가지 부담을 느낀다. 하나는 바쁜 시간을 할애해서 지옥같은 교통난을 이기고 식장에참석해야 하는 시간적 부담이며, 또 하나는 부조금을 전달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다.

봉투 의 무게와 체면

현재 적지않은 경우 우리의 결혼은 기쁜날이 아니라 우울한 사건이 되어가고,우리의 죽음은 성스럽다기보다는 가장 저속한 사건으로 변해가고 있다. 결혼식장을 찾아온 적지않은 축하객들은 축하금 봉투를 내면서 부담을 느끼고 장례식에 참석한 적지않은 조객들은 조의금 봉투를 전달할 때 고인에 대한 진정한 조의보다 봉투의 무게를 느낀다.

밝고 기쁜 마음으로 축복하는 이들로 가득차야할 결혼식장이 고지서를 받고 돈을 내고 체면을 지키러 왔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둘러싸였다면 축하금의 액수가아무리 많더라도 그 결혼식은 결코 축복된 것일 수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는애도를 표시하면서 고인과의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엄숙한 분위기를 가져야할장례식이 부조금 봉투때문에 마음의 무거움을 느끼는 이들로 술렁거린다면 그장례식은 고인에 대한 참된 행사일 수 없다.

모든 관습은 한 공동체가 필요에 따라 고안한 자연적 사회 제도이다. 그렇다면관습의 가치는 자명하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부조를 하는 것은 우리의 오랜아름다운 관례이다. 아무도 혼자 살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기쁨을 함께할 수있는 친구가 필요하며, 나의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이 필요하다. 친지의 혼례나 장례 때의 부조금 전달이라는 우리 관습은 이러한 필요에 따라 생긴相互扶助의 흐뭇하고 귀중한 미덕이다. 이런 관습을 아끼고 보존할 당위성은자명하다. 그러나 만일 아름다운 이 관습이 형식적 예절이나 은근한 뇌물수수의 기회로 타락했다면 그러한 관습은 하루속히 깨뜨려 버려야 한다.

소중한 意味 새겨야

꼭 초대해야할 친구를 빼놓고 자녀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은 우정의 원리에 배반되고 꼭 알려야 할 친지에게 입을 다물고 부모의 장례식을 마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다. 진정한 축하와 조의의 표시로 전달된 물질적 도움을 거절한다는 것은 인륜의 이치를 어기는 짓이다. 그러나 경제적 계산에서 남발되는 결혼청첩장이나 부고장은 보기에 퍽 천하고,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의 방명록 옆에 쌓이는 봉투의 모양은 신혼의 밝은 이미지나 죽음의 엄숙한 이미지와너무나 상충한다.

지명도가 높거나 권력을 가진 친구중에서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안 내고 자녀의결혼식과 부모의 장례식에 존엄성을 지켜준 이들을 알고 있다. 꼭 반대의 경우도 알고 있다. 결혼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낼때 그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포항공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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